▶ 이라크전 ‘배틀 오브 더 로드’필립 마 대위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을 찾아내는 미션 수행보다 힘들었던 것은 ‘더위와 졸음’이었습니다”
지난해 아카데미상을 휩쓸었던 영화 ‘허트라커’(the Hurt Locker)의 주인공처럼 이라크 전쟁에서 폭발물 처리반(EOD)으로 활약했던 한인 대위가 있다. 2008년 5월부터 2009년 7월까지 이라크에서 미 육군 폭발물 처리반 소대장으로 근무했던 필립 마(25)씨다.
마 대위는 “15개월 동안 1주에 5~6일은 30파운드 무게의 방호복으로 무장하고 하루 10~15킬로미터의 속도로 교묘하게 숨겨져 있는 폭탄들을 하나하나 찾아내는 나날의 연속이었다”고 말했다. “적게는 13명, 많게는 18명의 EOD 대원들을 이끌고 출동해 폭탄을 찾아내면 로봇을 사용해 폭탄 제거를 했다”는 마 대위는 극도의 긴장 속에서 경계와 수색을 늦추지 않으며 작전수행에 최선을 다하지만 목숨의 위험을 대비해 5박6일의 미션을 나가기 전날 밤이면 반드
시 어머니에게 전화를 했다고 한다.
현재 미 육군 본부에서 트레이닝 오피서로 근무 중인 마 대위는 2007년 웨스트포인트를 졸업하고 제5 공병대대에 배치됐다.
특수 훈련을 거쳐 2008년 5월 이라크전에 EOD 소대장으로 투입된 마 대위(당시 소위)는 바그다드 도시 곳곳에 설치해놓은 폭탄을 찾아내는 미션 ‘배틀 오브 더 로드’를 멋지게 수행하고 미 육군 본부로 귀환했다.
마 대위는 “제5 공병대대는 2003년 이라크전 발발 당시부터 파견된 정예부대였기에 주위 사람들이 ‘아직 미혼이냐’며 우려의 눈길을 보냈지만 국가를 위해 헌신하겠다는 각오로 미션에 충실했다”고 밝혔다.
매스터즈 부동산 그룹 마우일씨와 실비아 마씨의 외동아들로 태어난 마 대위는 그라나다힐스 고교와 웨스트포인트를 졸업했다. 공부보다는 농구와 야구 등 스포츠 경기에서 두각을 나타내던 그는 9학년에 접어들어 웨스트포인트 진학을 목표로 정하면서 학업에 열중했다. 웨스트포인트 토목 공학과를 상위 10%의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그는 육군 복무기간을 마치면 경영 대학원에 진학해 월스트릿에 진출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미 육군 제5 공병대대 폭발물 처리반 제2 소대원들이 장갑차를 뒤로 한 채 촬영한 단체사진. 왼쪽 첫 번째가 필립 마 당시 중위이다
(하은선 기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