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포레스트론 32년 근속 장례 컨설턴트 제임스 오씨
미주 한인사회 장례문화와 한국 납골당 문화를 이룩하는데 선구자적 역할을 한 포레스트 론 메모리얼 팍의 제임스 오 장례 컨설턴트. <이은호 기자>
‘걸어 다니는 장례백과사전’. 올해로 32년째 포레스트 론 메모리얼 팍에서 장례 컨설턴트로 일하는 제임스 오(77·한국명 오명엽)씨를 두고 하는 말이다.
오씨는 20여년 전 한인사회에서 처음으로 한국장의사가 설립될 당시 장례 사업에 근무한 오랜 경험과 지식으로 자문을 했다. 장지 구입은 물론 장례 상담을 하고 장례보험과 비석을 취급하는 등 미주 한인사회 장례문화의 대부로, 90년대 중반 서상목 보건사회부 장관 시절 한국의 납골당 문화를 이룩하는데 큰 공로를 세웠다. 그 뿐 아니다. UCLA가 미 대학농구에서 내셔널 챔피언이 됐던 1995년 그의 이름을 새긴 NCAA 반지를 받았을 만큼 농구에 대한 열정도 각별해 한국 프로농구 창설과 발전에도 기여도가 높다.
“죽은 사람을 마주하는 운명을 타고 났나 봅니다. 베트남전에 공보장교로 참가했을 때도 시신을 보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는데 지금은 미국 장례 컨설턴트로는 드물게 수의를 입히는 과정을 지켜보며 고인과 대화를 나누고 있죠”
오씨는 한국에서 정훈장교로 20년간 근무한 영관장교다. 1965년 맹호부대 정훈부 보좌관 겸 공보장교로 베트남전에 참가한 유공자이고, 귀국 후 육군 본부와 미 2사단 카투사 파견대장을 지냈다. 유엔군 사령부 작전처에서 대북심리전 담당관으로 근무했을 당시 노란 풍선에 전단지를 매달아 날려 보내는 ‘풍선작전’을 시작한 장본인이다. 중앙병무청 공보담당관으로 근무하다가 1974년 미군 중령 친구의 초청으로 미국 이민을 왔다. 버지니아주 알링턴의 아파트 콤플렉스 총책임자로 4년 간 일했고 건강문제로 남가주로 이주했다.
“LA타임스 광고를 보고 포레스트 론 직원 모집에 응시한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32년이 흘렀네요. 당시 4개였던 공원묘지가 지금은 남가주 9개로 늘었고 그동안 바뀐 직원이 42명에 달합니다. 또한, 2000년대 들어 한인들의 장례도 매일 한두 건으로 늘어났죠”
나이를 거꾸로 먹는지 70대에 접어들면서 건강이 더 좋아졌다. 한국어, 일어, 중국어에 능통한 그를 놓아주지 않는 회사로 인해 은퇴를 하고 싶어도 지금은 할 수가 없어 불편한 다리를 이끌고 매일 직장으로 향한다.
“여전히 한인들은 묘지(매장)를 선호하지만 경제사정으로 납골당(화장)을 찾는 이들이 늘고 있습니다. 포레스트 론은 조경이 아름다운 관광명소로 알려져 한인들은 물론이고 할리웃 명사들이 묻히는 공원묘지입니다. 그래서 자식들에게 폐가 된다며 미리부터 1~8년 월부로 장지를 구입해 두는 이들이 많습니다”
관절염 때문에 하도 신세를 많이 져서 은퇴하면 카이저 병원 자원봉사자로 일하고 싶다는 오씨는 아내 에스더씨와의 슬하에 2남1녀를 두고 있다.
문의 (213)321-5509
<하은선 기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