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처럼 생기고, 오리처럼 걸으며, 오리가 걸리는 병에 걸린 생물체가 있다면 오리를 치료할 능력이 있는 전문가에게 치료를 맡기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는 내과의사나 수의사 모두가 동감하는 사실이다. 우리가 아이를 낳을 때 정형외과가 아닌 산부인과 의사를 찾아가야 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미국의과대학협회(AAMC)에서 공중보건 및 질병예방 프로젝트를 책임지고 있는 리카 마에시로 박사에 따르면 내과의사가 알고 있는 것은 인체에 대한 지식이 거의 전부다. 그 이상의 것은 잘 모른다. 일반인들은 둘 다 의사라는 점에서 수의사 수준에는 이르지 못해도 치료 자체는 가능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찢어진 상처를 꿰매는 등의 단순한 처치가 아니면 내과의사는 동물의 치료는 차치하고 병명을 진단조차 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내과의사가 어쩔 수 없이 병든 동물을 치료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해 있다고 가정해보자. 마에시로 박사는 이 때 치료의 성패를 좌우할 요인으로 3가지를 꼽는다.
첫 번째는 그 의사가 동물의 질병에 대해 알고 있는 지식의 양이다. 동물은 인간과 달리 자신의 증상을 설명하지 못하기 때문에 의사 스스로의 판단으로 질병의 원인을 찾고 진단 및 치료를 해야 하는 탓이다.
물론 원인을 정확히 찾았더라도 제대로 된 치료가 이뤄진다는 보장은 없다. 미국수의사협회(AVMA)의 대변인인 킴벌리 메이 박사는 이에 대해 “다리 골절은 인간에게 별일이 아닐지 몰라도 말에게는 치명상”이라며 “동일한원 인이라도 인간과 동물에게 미치는 영향은 전혀 다를 수 있다”고 설명한다.
다음 요인은 동물이 걸린 질병의 종류다. 고도의 전문성이 요구되는 질병일 경우 치료는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당연한 얘기지만 평범한 상처와 출혈성 심부전은 치료방법이 전혀 다른 탓이다.
마지막으로 동물의 종류도 치료결과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몇몇 동물들은 인간과 너무 다른 신체구조를 갖고 있어 내과의사의 지식으로 감당하기에는 벅차다는 것. 실제로 개나 고양이, 돼지, 소 등의 포유류는 그나마 인간과 구조가 유사하다. 따라서 내과의사라도 최소한 어디서부터 치료를 시작해야 할지는 추측할 수 있다.
그런데 만일 환자가 뱀이라면? 아마도 어느 부위에 손을 대야할지 감조차 잡지 못할 개연성이 높다. 그렇다면 이와는 반대로 항공기 내에서 승객이 쓰러졌는데 기내에 오직 수의사만 있는 상황이라면 수의사는 과연 인간을 치료할 수 있을까.
난감하기는 매한가지다. 다만 그 승객이 포유류들도 걸리는 질병에 걸렸을 때는 일정부분 도움을 줄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인간들만 걸리는 질병일 때는 수의사가 해줄 것이 많지 않다. 메이 박사는 “아주 긴박한 상황이 아니면 수의사들은 내과의사가 동물을 치료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고 수의사 역시 사람의 치료에 나서지 않는다”며 “이는 전문의들이 가져야 할 예의이자 의무”라고 설명했다.
<파퓰러 사이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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