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링컨이 첫번째 약혼녀에게 보낸 연서, 그의 심리상태가 고스란히 느껴져
▶ 나폴레옹 . 넬슨 등 군인들 편지 많아
조 디마지오가 1954년 마를린 먼로와의 이혼을 발표한 직후 그녀에게 보낸 자필 편지. [사진출처: Julien’s Auctions].
꽃, 잡동사니 장식품, 빌려온 스웨터 등 로맨틱한 과거의 추억물도 유효기간이 지나면 버려진다. 그러나 러브레터는 다르다. 이들은 지갑이나 박스에 넣어져 침대 밑에 안전하게 보관된다. 편지보다 이모지로 애정을 표현하는 시대에 직접 손에 쥐고 읽는 연서는 수취인이 아닌 다른 이들에게조차 특별한 감정을 전달한다.
실제로 수집가들은 유명인들이 직접 쓴 다른 종류의 서신보다 러브레터의 가치를 높이 평가한다. 재클린 케네디 오나시스가 영국 외교관 데이비드 옴스비 고어에게 보낸 편지가 지난 5월 경매에서 여섯 자리 수의 고가에 거래된 것 역시 이런 연유에서일 터이다.
보스턴 소재 경매업소인 스키너의 희귀 서적 및 원고 담당 디렉터로 활동하는 디본 이스트랜드는 “특별한 사람이 쓴 러브레터는 연인 이외의 다른 사람에게 내보이고 싶지 않은 필자의 극히 사적인 사고와 감정을 담고 있다”고 말했다.
역사적 인물의 원고를 매매하는 딜러와 감정사들에 따르면 최근 경매에 나온 문서의 낙찰가는 필자의 유명세, 다큐먼트의 희귀성 및 원고 상태와 깊은 상관관계를 지닌다.
그러나 실제 경매가격은 문서 안에 세간에 알려지지 않은 내용이 얼마나 담겨 있느냐에 좌우된다. 부동산의 경우 위치가 가치 결정의 최대 요인이라면 러브레터의 가치는 쓴 사람의 마음에 달려있는 셈이다.
아브라함 링컨이 그의 첫 번째 약혼녀 매리 오웬스에게 보낸 편지는 이런 사정을 알아보는데 대단히 유용하다. 그의 편지는 2002년 경매에서 링컨의 서신중 최고가인 70만 달러에 팔렸다. 연서의 낙찰가 최고기록이기도 하다.
보존상태가 양호한 링컨의 러브레터는 그가 오웬스에게 보낸 세통 가운데 하나로 미래 대통령의 애증곡선과 불안정한 심리상태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링컨은 그의 변변찮은 수입에도 불구하고 오웬스가 자신과의 결혼을 여전히 원하는지 확인하려했다. 링컨은 편지에서 “결혼에 반대하지 않으신다면, 난 지금의 나와 달리, 반드시 당신을 행복하게 해드릴 겁니다”라고 밝혔다. 그 이전에 보낸 편지는 내용이 훨씬 구체적이긴 하지만 감정이 결여되어 있다. 게다가 편지지까지 빛이 약간 바랜 탓에 지난 9월 경매에서 11만 달러에 낙찰됐다.
링컨 연서를 제외하고 최고 경매가를 기록한 러브레터 가운데는 군인들이 쓴 것들이 유난히 많다.
1795년 혹은 1796년, 결혼 전 3개월간의 짧은 연애기간에 나폴레옹 보나파르테가 조제핀 드 보아르네에게 보낸 편지도 그중 하나다. 2007년 46만 7,958달러에 경매된 편지는 둘이 격한 말싸움을 벌인 후 나폴레옹이 보낸 것이다. 나폴레옹은 조제핀의 독설로 기분이 상한 사실을 시인하면서도 “당신의 가슴에, 입술에 그리고 두 눈에 세 번의 키스를 보냅니다”며 흔들리지 않은 마음을 전했다.
1800년 영국의 해군 영웅 호레이시오 넬슨 제독은 엠마 해밀턴에게 “당신의 온 몸에 열렬한 입맞춤을 했고, 이어 우리는 사랑의 황홀경을 즐겼다오”라며 자신이 꾼 19금 꿈 이야기를 했다. 이 서신은 17만 5,050달러에 팔렸다.
윈스턴 처칠 영국수상의 러브레터는 호쾌한 내용이지만 어딘지 허풍스럽게 느껴진다. 그는 자신의 첫사랑이었던 파멜라 플로우덴에게 1899년에 보낸 편지에서 “나와 결혼해 주오, 그러면 세계를 정복해 당신의 발아래 놓아드리리다”라고 호언장담했다. 이 편지의 낙찰가는 11만 3,782달러였다. 이와 대조적으로 처칠이 스탈린에게 보내기 위해 작성한 서신인 “폴랜드 문제” 초안은 3만 달러를 간신히 넘기는데 그쳤다.
런던소재 경매업소 크리스티의 서적 및 원고 담당 디렉터 토마스 베닝은 “사람들이 연서를 구입하도록 끌어당기는 힘은, 이를 통해 역사적인 인물과 직접적으로 연결됐다는 느낌을 주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위대한 군인들의 러브레터가 매력적인 이유는 그들의 가슴속에 존재하는 전혀 예상치 못한 취약점을 목격하게 된다는 점이라고 덧붙였다. (유명 여성의 러브레터가 장군들의 연서에 비해 싼 가격에 경매되는 이유는 그 내용이 거의 예상을 빗나가지 않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고정관념의 틀에서 벗어나는 사례가 거의 없다.)
메리저 리그의 국민타자 조 디마지오가 여배우 마를린 먼로에게 보낸 유려한 필체의 친필 편지가 극작가인 아서 밀러가 타이프로 작성해 먼로에게 띄운 두 통의 러브레터보다 훨씬 비싼 가격에 거래된 이유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터프가이의 외관 뒤에 숨은 부드러움이라는 반전매력이 경매가격을 올린 주요 요인이었다는 분석이다.
물론 글 솜씨는 아서 밀러 쪽이 훌륭했지만, 타이프로 찍힌 그의 장광설은 어쩐지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다. 결국 경매가는 6만 2,500달러 대 1,024달러와 9,728달러로 디마지오 쪽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하지만 누군가의 가슴 속을 훤히 보여주는 것이 셀링 포인트의 역할을 전혀 하지 못할 때도 있다. 한 예로 스누피로 유명한 만화가 찰스 슐츠가 쓴 44통의 편지는 2012년 경매에 나왔으나 끝내 팔리지 않았다.
그의 편지가 쓰여진 1970년대 당시 슐츠는 중년의 유부남이었다. 그런 그가 20세 연하인 여성에게 40통이 넘는 연서를 띄운 것 자체가 유치하고 부도덕한 느낌을 주었을 수 있다.
한 번에 일괄적으로 팔리는 연서 모음은 발신자와 수신자 사이에 형성된 관계의 궤적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비싼 가격에 거래된다. 특히 편지에 널리 알려진 인사의 필자의 작업과정, 혹은 창조적 프로세스에 관한 언급이 담겨 있을 때에는 더욱 그렇다. 대표적인 예가 알버트 아인슈타인과 그의 아내 미레바 마리크 사이에 오간 53통의 연서 묶음이다. 아인슈타인의 작업내용이 담긴 러브레터 시리즈는 40만 달러에 새 임자를 만났다.
롤링 스톤스의 리더인 믹 재거가 1969년 그의 여자 친구 마샤 헌트에게 보낸 열통의 편지는 23만 4,500달러의 경매가격을 기록했다. 이 가운데 한 통의 내용을 그대로 옮긴 다음 거기에 단 세 줄의 노랫말을 추가한 곡이 바로 “몽키 맨”(Monkey Man)이다.
재거와 헌트 사이의 연서 시리즈를 구입한 앤-마리 스프링거는 스위스 니옹에서 활동하는 유력한 연서 전문 수집가다. 그녀의 소장품목에는 프레데리크 쇼팽, 윈스턴 처칠, 제임스 조이스, 엘비스 프레슬리, 나폴레옹과 프리다 카로의 러브레터도 들어있다. 그녀는 “슈퍼스타들 역시 보통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연애를 하면서 수줍어하고, 감정적이 되거나 가슴앓이를 한다는 사실이 더없이 우리를 매료시킨다”고 밝혔다.
스프링거는 “돈으로 사랑을 살 수는 없다 하더라도, 역사적으로 유명한 인물들조차 사랑에 수반되는 겸손과 상심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사실이 우리 모두에게 축복이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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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New York Tiems 특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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