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퍼스 행사 중 아마 졸업식처럼 축제분위기를 띠는 행사는 없을 것이다. 끝냈다는 성취감과 만족감, 새로 시작한다는 기대감으로 캠퍼스는 흥분의 도가니가 된다. 사각모를 쓴 학생들이 자신만만하게 교정을 걷고 있는 모습도 보기 좋고, 더욱 보기 좋은 모습은 자랑스러워하는 가족들의 모습이다. 졸업축가에 발 맞추어 졸업식장으로 입장하는 학생들을 축하하기 위하여 수만 명의 관객들이 일어서서 스태디움이 떠나가듯이 박수를 치며 환영하는 모습은 참으로 보기 좋다.
한 주말에 세 군데 졸업식에 참석할 기회가 있었다. 우리 학교, 아들 학교, 그리고 몇년 전에 한국학 대학원 설립으로 인연을 맺은 가주 국제문화대학 졸업식에 갔다.
아들의 학교는 우리 학교보다 좀더 자유분방한 졸업식 분위기였다. 졸업식이 시작하기를 기다리는 동안, 텅빈 경기장으로 한 무리의 학생들이 스태디움으로 들어와서 뛰며 놀았다. 어떤 학생은 비치볼을 던지면서 놀기도 하고, 물총을 쏘기도 하고, 물구나무서기도 하고, 어떤 여학생은 학사모에 비키니 수영복을 입고 뛰어 다녔다. 마치 서커스의 쇼 같았다.
한 남학생이 "어머니 감사합니다"하는 한국말로 된 사인을 들고 스태디움으로 들어왔다. 그곳에서 한국말로 된 사인을 보리라고는 생각지도 않았기 때문에 호기심에서 그 학생에게 눈길을 돌렸다. 사각모 위에 풍차가 뱅글뱅글 도는 모습이 우스웠다.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혹시나 하는 생각이 들어 옆에 앉아있는 남편에게 "우리 아이 아니냐"하고 반신반의하며 물었다.
아니나 다를까. 아들이었다. 수만 명중에 아들을 찾은 나는 너무 반가워서 "저 아이가 우리 아들이다"하며 아들을 가리키며 외치자, 주위에 있던 사람들이 함께 고함을 치면서 아들 이름을 불러 주었다.
수만명의 관중속에 섞여 있던 우리들을 찾으려는 아들의 계획이 성공한 것이다. 아들아, 이제 너의 새로운 인생이 시작하는구나. 위트와 유머를 잊지 말고 살기를 기도한다.
우리 학교 졸업행사 중에 내가 좋아하는 행사는 우리 과 졸업식이다. 6000명이 넘는 학생들이 졸업하기 때문에 졸업생들에게 개인적으로 신경을 쓸 수가 없다. 그래서 우리과는 따로 졸업식 전야에 교수들, 학생들, 학생들의 가족들이 함께 모여서 만찬을 한다. 학창시절에 가장 기억에 남았던 이야기며, 강의실에서 나누지 못하였던 인간적인 이야기가 이곳에서 시작된다. 학생과 선생의 사이가 아니라, 동등한 사회인의 위치에서 서로 마음을 터놓고 나누는 대화이다.
제2회 한국학 석사학위를 받는 L선생을 축하하고 싶어 가주국제문화대학 졸업식에 참석하였다. 한인센터 좁은 뒤뜰에서 열린 졸업식은 녹음이 우거지고 잔디가 깔린 넓은 캠퍼스의 정경과는 거리가 멀었다. 라이브 밴드가 졸업생 입장을 위하여 연주하는 대신에 테이프에서 흘러나오는 연주에 맞추어 졸업식이 시작되었다. 그야말로 조촐한 모임이었다. 그러나 의미 있는 모임이었다.
올해 졸업한 두 분은 가르치는 사람들이다. 많은 이민1세들이 2세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그러나 2세 교육을 위해 직접 나서서 가르치는 사람은 많지 않다. 2세 교육을 더욱더 잘 해보고 싶다는 목표에서 눈을 떼지 않고, 없는 길을 만들어 가면서 걸어 온 두 분의 졸업식은 어느 졸업식보다 의미가 있었다.
가끔 산으로 하이킹을 가는데, 어떨 때는 길이 없는 곳을 걷게 되는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목표물에 눈을 고정하고 걸으면 목적지에 도착하게 된다. 구비구비 오솔길을 따라 걸을 때 목표가 시야에서 사라지기도 한다. 그럴 때도 목표물이 보이지 않지만 가던 길을 중단하지 않고 걷다보면 목표물이 다시 시야에 나타난다. 가는 길에 갈림길에 도달하기도 한다. 그럴 때도 목표물에서 눈을 떼지 않고 그 방향으로 걸어가면 목적지에 도달하게된다. 졸업생들도 이처럼 푯대에 눈을 떼지 않았기 때문에 졸업식에 도달한 것이다.
졸업축사를 영어로 ‘commencement speech’라 한다. ‘commencement’는 ‘시작’이라는 뜻이다. 그러니 졸업식은 끝이 아니다. 다음 행선지의 시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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