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내가 무딘 필을 드는 이유는 미주에서 활동하시는 문인 여러분에게 꼭 들려드리고 싶은 이야기가 있기 때문이다. 나는 지난 해 3월 병원에 있었다. 그 때 문병을 오신 분중 C모 여사께서 책이나 읽으라며 “나는 아직도 스님이 되고 싶다”라는 최인호 수상록을 갖다 주셨다. 최씨는 문단으로 따지자면 하늘같은 선배가 되지만 육신의 나이는 나와 동년배가 된다.
그러나 다음에 소개하는 K후배에게 쓴 글을 읽고 존경심마저 같게 되었다. 글을 쓰는 모든 사람이 마음 판에 새겨 두어야 할 경전 같은 글이기에 말이다. 책 속에 있는 선생의 글을 소개한다.
소설가 K형. (미주 문인 여러분!)
저는 K형이 정말 좋은 글을 쓰는 작가이기를 바랍니다.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는 K형이 무엇보다 우선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만년필에 푸른 잉크를 넣으면 푸른 글씨가 나오며 붉은 잉크를 넣은 만년필에서 푸른 글씨는 나올 수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들 소설가들은 머리 속에 거짓과 욕망과 증오와 독선과 이기심이 가득 차 있는데 우리의 손끝에서 어떻게 바른 글과 좋은 글이 나오기를 바랄 수 있을 것입니까.
그런 의미에서 K형이나 저나 작가이기를 꿈꾸기보다는 수도자이기를 바라야 할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K형, 우선 과감히 문단을 떠나십시오. 예부터 수도를 하는 스님들은 모든 것을 버리고 청산으로 숨어 들어갔습니다.
K형, 작가에게는 문단이야말로 무서운 함정이라고 생각됩니다. 그곳은 작가 정신이 살아 있는 곳이 아니라 이해상관으로 얽매인 먹이사슬의 하나인 조직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곳에 어울리면 K형의 이름은 평론가에 의해서 인정받아 조금쯤 더 알려질지도 모릅니다. 고독이 두려워서, 잊혀지는 것이 무서워서 끊임없이 모여서 서로가 서로를 확인하는 작업은 사교에는 도움이 될지 모르지만 작품과는 전혀 상관없는 일입니다.
소설가 K형.
일찍이 부처는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숲 속에 묶여 있지 않은 사슴이
먹이를 찾아 여기저기 다니듯이
지혜로운 이들이여 독립과 자유를 찾아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저는 K형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기를 바랍니다. K형이 진심으로 잊혀지는 작가가 될 수 있다면 아마도 K형은 정말로 잊혀지지 않는 작품을 쓰게 될 것입니다. 문학상을 받기 위해서 작가들을 만나서 친하려 하지 마십시오. 작가를 유명하게 해준다는 출판사와 멀리 하십시오. 신문에 이름이 한 줄 나기 위해서 담당 기자와 우정을 유지하지 마십시오. 끼리끼리 모이면 힘이 생겨서 영향력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해서 패거리를 만들려 하지 마십시오. 그런 것은 조직깡패들이나 하는 것입니다. 그 무엇에도 얽매이지 말고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바람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처럼, 오직 자기 자신만을 의지하고 무소의 뿔처럼 길 없는 길을 혼자서 가십시오. 그 모든 것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로울 수 있을 때 K형의 작품에도 비로소 영성이 깃들이게 될 것입니다.
참으로 문단의 달인다운 말씀이다. 불행하게도 우리 미주 문단에는 이러한 선배들이 한 분도 아니 계신다. 경력과 권위를 내세워 헛기침하는 분, 선배라는 이름으로 후배들의 발목을 잡는 분, 졸병들 모아 골목대장을 즐기는 분, 한국에서 온 문인이라면 껌뻑 죽는 분, 그 분들 뒷바라지에 공사가 다 망한 분, 등등이 오늘의 미주문인의 현주소다. 우리 모두 각성하고 자신의 실력배양에 몰두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래서 한국의 문인들이 미주문인들의 실력에 혀를 내두르며 한 수 배우러 유학 오겠다는 사람이 LAX에 장사진을 치는 날 그 날이 빨리 왔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 날이 올 것을 굳게 믿으며 오늘은 내 라도 울어야지 오뉴월 장마에 논바닥 개구리 울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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