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대대적 테러대전에 돌입해있다. 9·11테러가 직접적 빌미를 제공한 테러대전의 1차 대상은 물론 오사마 빈 라덴, 그가 키운 국제 테러조직 ‘알카에다’와 이들을 비호해온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정권이다. 그러나 부시 대통령, 도널드 럼스펠드 국방장관, 토머스 화이트 육군장관 등 미국 지도자들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테러 비호국은 모두 미국의 적"이라든가 "아프가니스탄은 시작일 뿐"이라면서 이번 전쟁이 그 정도로 끝나지 않을 것임을 공언한다.
과연 전쟁이 언제 시작되고 어떤 과정을 거쳐 어느 나라로 확산될 지에 대해서는 정확히 예측하기 어렵다. 그렇지만 분명히 예측할 수 있는 한 가지가 있다면 전쟁의 결과 또는 효과에 대한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미국은 이번 전쟁으로 결코 원하는 목적을 달성하지 못할 것으로 본다. 적어도 미국이 지금까지와 같은 철학에 입각해 전쟁을 치른다면 그렇다는 얘기다.
부시 행정부가 이번 전쟁으로 얻으려는 목적은 간단하다. 이번 같은 테러의 재발을 막고, 이번 전쟁을 빌미로 세계 질서의 ‘새 판’을 짜는 것이다. 각 시대마다 ‘새로운 질서’가 ‘새로운 전쟁’을 통해 만들어졌던 인류의 역사를 되돌아보면, 이번 전쟁에 붙은 ‘새로운 전쟁’이라는 이름 자체는 "정규전과는 다른 양상의 전쟁"이라는 의미일지 모르나 그 결과는 이름 자체의 의미를 훨씬 넘어서는 것임을 알 수 있다.
비교적 부수적인 국내적 전리품도 있을 것이다. 정권 재창출 확고화, 군수산업 부활과 이를 통한 경제 활성화, 소수계 증가로 구조적으로 약해진 공화당의 정치적 입지 강화 같은 것들이 떠오른다.
부시 행정부는 9·11테러가 있자마자 이번 테러를 미국에 대한 선전포고라고 규정했다. 이 같은 해석이라면 미국은 건국이래 최초로 미국 영토에 대해 적의 공격을 받아 약 7,000명이나 되는 미국민들이 생명을 잃은 셈이다(1941년 진주만 기습 당시 하와이는 미국의 정식 영토가 아니었고, 2차대전 때 일본군이 애드벌룬에 폭탄을 실어 본토 공습을 시도했지만 이 때도 인명피해는 없었다). 그러니 미국의 충격도 당연하고 아프간 공습에 2차대전 이래 최대의 공군력을 동원할 것이라는 보도가 나오는 것도 이해할 만하다.
그런데 어째서 미국의 전쟁이 소기의 효과를 거두지 못할 것이라 하는가.
첫째, 앞서 열거한 전쟁의 목표 때문이다. 전쟁의 목표가 너무 소승적이라는 얘기다. 이 정도 소승적 목표라면 설사 목표를 달성해도 문제를 ‘휴화산’으로 만들어 두는 것에 불과한데 ‘휴화산’이란 언제라도 ‘활화산’으로 바뀔 수 있는 법이다.
둘째, 다른 나라 국민의 인권문제가 미국의 단기적 국익과 충돌할 때 미국이 보여주는 야누스 같은 모습 때문이다. 이 같은 이중적 모습은 한국인 관련 사안에도 널려 있다. 미행정부는 노근리 사태도 어물쩍 넘어가고, 한국전쟁 당시 민간인 집단학살 전반에 대해서는 진상을 뻔히 알고 있는 것 같은 데도 진상공개 요구 자체를 일축하고, 미국 법정에서 벌어지는 ‘일본군 위안부’ 소송에서는 우스꽝스럽게도 일본 편을 들고, 빈 라덴의 생물전 가능성에 대해서는 요란을 떨면서 자기들이 개입된 생물전 문제에 대해서는 원초적 자료조차 공개하지 않는다. 이 모두가 현재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다.
현재와 미래의 무고한 희생을 줄이는 것만이 당면과제가 아니다. 이 정도라면 진정한 승리는 없다. 미국이 진정한 승리를 통해 테러문제를 ‘사화산’으로 만들려면 ‘가지지 못한 자’, 역사적으로 ‘당한 자’의 입장에서 그들의 고통과 슬픔을 이해하고 어루만질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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