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다이앤 소여를 무척 좋아한다. 채널7 ABC 방송의 굿모닝 아메리카는 내가 언제나 아침이면 습관처럼 켜두고 하루를 시작함이 신이 난다. 먼저 하던 진행자가 바뀌고 다이앤 소여가 진행을 맡을 것이라는 예비 프로그램이 나오고 잇달아 아침 TV 인터뷰에 나왔을 때 그 의욕 찬 음성과 몸가짐에 흠뻑 빠져들었었다.
9월11일 화요일 아침도 다른 날과 똑같이 TV를 켰다. 그러나 TV에서 쏟아져 나오는 뉴스들이 긴가 민가 하는 의구심마저 들었다. 하루종일 정말 믿을 수가 없는 현상들이 내 시야 속에서 ‘Attack on America’의 자막 속에 하루종일 아니 이틀, 사흘을 계속해서 방영되었다.
루돌프 줄리아니 뉴욕시장이 나오고 헌혈센터의 행렬이 기다리는 속에 그들의 허기와 목마름을 채워주기 위한 음식들이 신속하게 제공되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여기 이렇게 앉아 방관만 해야 하는가? 아니지- 기도를 해야지… 뉴욕, 1997년 내가 이민 와서 일년을 머물렀던 정이 많이 들었던 곳!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을 관광하면서 그 아름답기까지 해 보였던 월드 트레이드센터! 배경으로 커다란 간판의 킹콩이 우스꽝스럽게 뉴욕시를 장식했던 희미한 기억들이 떠오른다.
길가의 잡초가 우리 고국과 꼭 닮아서 나를 위로해 주었고 김치 냄새 맡고 날아든 조그만 파리 한 마리가 정말로 내 고향 파리와 똑같아 이민의 적막을 헤칠 수 있을 것 같은 용기를 주었던 영원히 잊을 수 없는 곳! 뉴욕- 부디 모든 상처가 쉬이 아물기만을 아무 말 못하고 아픈 가슴으로만 기도하리- ‘America United’ 미국의 저력을 본다. 착하고 애국심 많은 시민들을 본다. 추모식에 참석한 우리의 참 인간들을 만난다. 눈물로 얼룩진 슬픔이 쌓인 사람들을 본다. 정말 가슴 아프다. 이 큰 시련 앞에 나를 가늠해 본다.
성조기 물결이 전국을 흐르고 있다. 이제는 삼남매가 모두 자라 결혼해서 집을 떠났다. 좁게 느껴졌던 집이 이제 우리 부부에게는 꼭 안성맞춤 같이 됐다. 20년을 넘게 살아온 이 집! 아이들이 잠자던 방 중, 고등학생 시절의 삼남매는 저희들이 미국 사람들인 줄 착각하고 사는 모습 속에 큰 성조기가 항상 저희들 방 한쪽 면을 장식하고 있었다.
공부하려 떠나보내고도 이 성조기만은 남겨두고 내 마음을 챙기던 성조기를 작년에야 씻어서 고이 접어 두었었다. 어디 쓰일 데가 있겠지 하고… 그런데 지난 5월 남편의 친구 아들이 USC MBA 공부를 마치고 귀국할 때 나는 남편이 자기 자식과 똑같이 챙기던 그 아이를 위해 무언가를 주고 싶었다.
그러나 모든 것을 다가진 것 같은 그 아이에게 줄 수 있는 것이 없어 보였다.
그러다 생각해 낸 것이 씻어서 간직했던 아주 큰 성조기였다. 마침 이 미국에서도 큰 시장을 가지고 있는 본국 회사에 취직이 됐기에… "혹시라도 너희 회사에서 이 성조기가 필요한 기회가 오면 유용하게 쓰거라"고… 온 이웃들이 성조기를 집 앞에 꽂아두었다. 어떤 집은 앞마당 잔디 위에도 두서너 개씩 꽂아 놓았다.
무얼 꽂는다 내건다는 것에 무관심했던 남편이 이번에는 웬일로 성조기를 달자고 때를 쓴다. 나는 웃어버리고 말았다. 다음날 회사 직원들이 준비한 하얀 티셔츠에 ‘God Bless America’가 성조기와 함께 인쇄된 것을 손에 들고 퇴근해 이 티셔츠를 현관에 달자고 어린아이 같이 막대를 찾아보란다. 정말 이상한 일이다. 퇴근하는 남편을 행복하게 해주기 위해 차고 문 앞에 테입으로 ‘God Bless America’를 장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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