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아시아가 요즘처럼 뉴스의 각광을 받은 적은 없을 것이다. 오사마 빈 라덴의 테러 집단이 은신해 있는 아프가니스탄과 그 이웃나라인 파키스탄, 타지키스탄, 우즈베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의 지도가 연일 신문과 TV에 나오고, 그곳 정부와 주민의 동정이 자세하게 보도되고 있다. 파키스탄의 수도 이슬라마바드의 호텔에는 전세계에서 기자들이 몰려 하루 숙박비가 엄청나게 뛰어올랐다고 한다.
중앙아시아는 유라시아 대륙의 중앙을 가로지르는 광대한 초원과 넓게 펼쳐진 사막과 고원지대로 구성돼 있다. 중앙아시아는 몽골고원에서 파미르고원, 헝가리초원에 이르기까지 방대한 지역을 포괄하지만, 인류 역사에서 거의 소외지대나 다름없었다. 역사학자들이 동양사와 서양사로 구분하면서 중앙아시아의 역사를 거의 연구하지 않았던 것도 그곳에 산 사람들이 문명 세계와는 동떨어진 삶을 살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혹심한 추위와 타는 듯한 더위, 고원지대의 매서운 바람, 물한방울 없는 사막의 극도로 험한 조건에서 생존했다. 야만 생활에 젖어있던 중앙아시아인들은 추위와 목마름,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해 오랜 역사 과정에서 문명세계 주위를 배회하다가 풍부한 농작물, 도시의 호사스러움을 놀라운 눈으로 바라보았고, 그 문명을 약탈하고 파괴했다.
중앙아시아의 민족이 역사의 그물을 찢고 등장할때는 거대한 소용돌이를 만들어냈다. 중국 한나라와 로마제국을 괴롭혔던 훈(흉노)족, 징기스칸의 몽골족, 그의 후예를 자처한 티무르 제국이 바로 그것이다.
5세기 중엽, 로마제국은 러시아 초원을 건너 파죽지세로 달려온 훈족의 앗틸라 추장의 공격으로 극도의 혼란에 빠졌다. 앗틸라는 로마 제국 변방에 포진했던 게르만족을 압박했고, 게르만의 부족들은 로마 영내로 들어갔다.
앗틸라는 다뉴브 강을 건너 당시 세계의 수도였던 로마로 진군했다. 그들은 어느 지역을 점령하면 식민화하지 않고 파괴해 버렸다. 그들은 동양문화의 중심지였던 중국 하북(河北) 지방을 교란하다가 한무제의 반격으로 중앙아시아로 쫓겨나 2세기 동안 초원을 전전하다가 유럽 문명을 공격했던 것이다.
몽골고원에서 발원한 징기스칸 역시 중앙아시아의 야만성을 또한번 인류 역사에 드러냈다. 몽골군은 문명의 파괴자였고, 학살자였다. 그들은 도시를 파괴하고, 그 자리에 초원을 만들었고, 지금의 인도 국경지역을 공격할때는 ‘개와 고양이까지 죽였다’고 사서에 나올 정도로 생명을 모두 죽였다. 약탈자는 중국의 남송을 멸망시키고, 유럽의 당시 최대세력이었던 합스부르크가의 영지(헝가리)까지 침공, 파괴를 일삼았다.
문명 세계를 질시하고 파괴하고, 무차별 죽음을 초래한 그 야만성이 또다시 중앙아시아를 무대로 인류 역사 전면에 모습을 드러냈다. 혹자는 9.11 테러참사를 새무엘 헌팅턴 교수의 ‘문명의 충돌’ 이론에 대입, 이슬람권과 비이슬람권의 분쟁으로 보기도 하지만, 헌팅턴 교수는 최근 자신의 저술이 테러를 의미하지 않았다고 밝혀 섣부른 해석에 쐐기를 박았다. 문명과 문명의 충돌이 아니라, 문명과 야만의 충돌이라고 해야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중앙아시아의 훈족이나, 몽골족은 문명을 파괴했지만, 결국 문명에 동화되거나 멸망하고 말았다. 문명이 야만의 폭력성보다 강하다는 사실은 역사에 의해 입증되고 있다.
우리는 지금 역사적 분기점에 살고 있다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서양사가 고대에서 중세로 넘어가기 앞서 앗틸라의 공격이 있었고,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갈 때 징기스칸의 침략이 있었다. 세계적으로 권위있는 언론들은 이번 참사가 역사의 중대한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진단하고, 새로운 밀레니엄은 9월 11일부터 시작되었다는 분석도 있다. 아직 불확실성의 구름이 걷히지 않고 있지만, 인류 역사에 큰 변화가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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