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저녁으로 공기가 달라졌다. 여름내 달라붙던 열기가 스러지고 옷깃을 파고드는 바람이 쓸쓸해지며 기운도 떨어져 맥이 풀려 있다.
계절이 바뀌며 주위 풍경의 색깔도 변화되고 있다.
아직 겨울의 찬바람이 남아있던 봄에는 신호등의 붉은 빛이 시선을 잡아끌었다.
길을 건너려고 서있으면 황혼이 막 내려앉으려는 하늘을 배경으로 켜지는 붉은 신호등 불빛이 얼마나 고운지, 그럴 때 빨간색 블라우스를 입고 싶었다.
수목이 울창한 한여름, 푸른 신호등에서 흘러나오는 푸른빛은 가는 걸음을 멈추게 할 정도로 정신을 홀리는 아름다움이 있었다.
가로수가 오래 되면서 도로 위까지 나뭇가지가 넘어와 무성한 나뭇잎의 진한 초록색을 바탕으로 야광으로 빛나는 초록색 신호등은 노을이 설핏 깔리는 저녁 9시경 가장 아름다운 빛을 발했다.
초록의 잔치가 흐드러진 여름, 초록색 바지를 입고싶었다.
이제 석양이 점점 낮 시간으로 올라오면서 신호등의 푸른빛이 선명하게 빛나는 시간도 당겨 올라오고 있다. 가을이 깊어가면서 나무마다 단풍도 들고 있다. 노란색, 붉은색 단풍으로 자신의 몸을 불태우고 있는 각종 나무들,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 잎은 노란 리본처럼 보인다.
“떡갈나무 둥치에 노란 리본을 매두세요” (Tie a Yellow Ribbon round the Ole Oak Tree).
이 노래는 베트남 반전 운동이 한창이던 1973년 가수 토니 올랜도가 작사 작곡해 부른 노래로 원래 가사는 전쟁과는 거리가 먼 죄수의 얘기였다.
복역을 마치고 석방된 죄수가 고향집 길목을 찾아 들어서니 추억 어린 떡갈나무에 1백 개의 노란 리본이 펄럭이며 환영해 주었다는 감동 스토리다.
그 이후 이별한 사람, 특히 전쟁에 나간 사람들의 행운과 승리를 비는 “노란 리본 달기”로 미국 사회의 한 풍속으로 정착되었다. 걸프전, 아랍게릴라에 억류된 미국인 인질 등의 무사귀환을 위해 너도나도 집 뜰에 노란 리본을 달았었다.
역사학자들은 노란 리본의 유래가 남북 전쟁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무사귀환을 기원하는 마음으로 군인들은 노란 목도리를 매고 아내와 연인들은 “전장에서 돌아올 때까지 이 남자를 기다린다”는 정표(情表)로 노란 리본을 달았다는 것. 테러와의 전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이라 아직 노란 리본 달기는 별로 보이지 않지만 아마도 신호등에 달린 노란 리본은 노란 불이 켜지면 더욱 따스해 보일 것이다.
노란 신호등에서 흘러나오는 노란빛은 차가운 겨울 날씨와 매서운 바람을 녹이고 맛있는 저녁, 훈훈한 불가, 폭신폭신한 잠자리 그런 것들을 떠올리게 할 것이다.
전선에 나가있는 장병들에게 총알이 빗겨가 무사히 귀환해 돌아오기를 바래는 마음은 머잖아 가로수, 국기게양대, 자동차 안테나, 고층빌딩 전면, 현관, 우체통, 정원의 나무 등 전 미국에 노란 리본을 달게 할 것이다.
그런데,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신호등이 있으면 어떨까?
“가까이 가보았자 좋을 것이 없는 사람”, “더 이상 친해서는 안될 사람”, “절대 요주의 인물”이라면 붉은 색 불이 켜지고 “얼마든지 가도 좋다”, “무제한으로 다가서도 무방하다”할 때에는 초록색 불이 켜진다면, 또한 “속을 잘 모르니 경계할 사람”, “좀더 지켜보아야 할 사람”은 노란색 불이 밝혀진다면 아마도 인간사에 고통과 비극은 더 이상 없을 것이다.
군인의 무사귀환을 위해서, 사람과 사람 사이의 안전 거리 확보를 위해서, 이번 겨울엔 아무래도 노란색 스웨터를 장만해야 할까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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