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성락 차장대우
테러사건 기사작성을 위해 편집국이 정신 없이 돌아가고 있을 무렵 30대 중반으로 여겨지는 한 여성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토랜스에 살고 있다고 밝힌 이 여성은 도움을 청한다며 "방독면을 구입하고 싶은데 어디서 구입할 수 있느냐"고 물어왔다. 그러면서 자신이 얼마전 목격했던 사실을 소개했다.
사건이 발생하고 얼마 안돼 우연히 백인 이웃 남성과 얘기를 나누다 거라지 한 모퉁이의 작은 수납장을 열어 보여주기에 들여다보니 가족수대로의 방독면과 비상식량이 가지런히 놓여져 있더라는 것이다. 이 남성은 제2의 테러가 화생방 공격이 될 수 있다는 정부의 경고 때문에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 이를 준비하게 됐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뉴욕과 워싱턴을 강타한 테러사건으로 가뜩이나 기분이 찜찜하던 차에 이웃의 준비태세를 보고 나니 사태가 자신의 생각보다 훨씬 심각하다는 불안감을 느끼게 됐고 급히 인터넷을 통해 방독면 구입처를 살펴보았지만 웬만한 곳은 이미 물건이 동이 난 것을 보고 더욱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혹시나 도움을 받을 수 있을까 해서 신문사에 전화를 걸었다고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이 여성은 전화를 끊으면서 "한인들의 준비가 미흡할 것"이라며 "꼭 판매업소를 신문지상에 알려 주길 바란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통화를 마친 뒤 곧바로 인터넷에 들어가 방독면 판매업소를 찾아 봤더니 실제로 일부 업소는 빨강색으로 ‘sold out’이란 표시가 나타나 있었고 다른 업소는 200달러가 훨씬 넘는 고가품들 만을 판매하고 있었다.
일을 마치고 귀가해 집안으로 들어가던 중 옆집 백인 할아버지가 막 집밖으로 나오는 것을 보고 곧바로 달려가 인사를 한 뒤 "집에 방독면을 준비해 뒀냐"고 물어 보았다. 그런데 이 할아버지의 대답은 전혀 다른 것이었다. "화생방 테러가 있을 수 있다는 방송을 알고 있지만 개의치 않는다"며 "우리 나이에 뭐가 무섭겠냐"고 반문했다. 이 할아버지는 또 "만약 그같은 사태가 벌어진다면 아내와 조용히 기도하면서 죽음을 맞겠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9월11일 테러사건은 한인사회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동안 단 한번도 영토가 공격받지 않았던 미국도 이젠 더 이상 예외일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고 위기에 처했을 때 더욱 차분한 자세로 ‘God Bless America’를 부르는 미국인들의 자세를 우리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를 자문해야 하게 됐다. 또 국가의 부름을 받고 전함을 타고 중동지역에 파견되고 지상에서 비상대기 상태에 들어가는 우리 2세들의 무사귀환을 기도해야 하게 됐다. 특히 이번 사태는 ‘이 땅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깊이 생각하게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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