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 형사법원에는 가정문제만 다루는 법정이 따로 있다. 이 법정에 한국인의 사건이 없는 날이 거의 없을 정도로 한국인의 가정폭행 사건이 심각하게 많다. 이렇게 한국인의 가정폭행사건이 대부분 젊은층에서 일어나고 있는데 젊은층의 의식에 윤리적 가치관에 문제가 있어 보인다.

사건의 대부분은 거의 유사한 것으로 과열된 부부간의 말다툼 끝에 저지른 남편에 의한 폭행사건이다. 대화가 이루어지지 못하여 말다툼으로 발전하고 말다툼은 주먹질로 끝이 난다는 이야기다. 부부간의 다툼을 주먹으로 결론내려고 하는 부부싸움은 힘으로 승부를 내겠다는 싸움이니 생리적으로 우세한 남성이 거의 폭행의 가해자가 되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그렇다면 힘의 우세를 이용하여 문제의 결판을 내겠다는 남편의 행동은 힘만으로 우열을 가려주는 동물세계의 처신과 다를 것이 없다고 할 수 있다.

우리 조상들은 ‘부부싸움은 칼로 물베기’라 했다. 칼로 물베기 싸움이 부부싸움의 정석이다. 싸울 적의 격한 감정이 가라앉고 나면 칼로 물을 벤 것 같이 상처 자국이 남지 않는다는 뜻이다. 남남인 두 사람이 만나 살아가다 보면 어찌 다툼이 없겠는가 마는 그 다툼이 상처를 남기는 싸움이어서는 부부싸움이 아니다. 그렇다면 가정폭행혐의로 법원에 재판을 받으러 오는 사람들은 부부싸움의 전형(典型)이라야 하는 물베기 싸움을 할줄 모르는 사람들이다.

우세한 힘을 가지고 폭행을 저지른 남편은 첫째는 동물적 근성을 보인 것이고 가장 중요한 것은 이렇게 동물적 근성에 따른 폭행을 함으로써 아내의 인격을 짓밟았다는 뜻이다. 폭력으로 짓밟힌 인격은 싸움이 끝났다고 치유되지 않는다. 그 상처는 오래 오래 남아있게 마련이다. 왜냐하면 싸움에서도 지켜야 할 정도가 있게 마련이고 이 정도(正道)를 넘어버리면 가해자는 어떤 동기였었던지 간에 비난을 받게 되어 있다. 말하자면 싸움의 윤리가 지켜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싸우는 판국에 무슨 윤리며 도덕이 있느냐고 할지 모르겠으나 인간이 짐승과 다른 이유중의 가장 중요한 것이 이 윤리를 지킬줄 아는 싸움의 슬기이다. 비단 개인간의 싸움 뿐이 아니라 국가간의 싸움인 전쟁에서도 마찬가지로 지켜야 할 도덕률(道德律)이 있다.

싸움을 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싸움은 상호 의사의 소통이 되지 않을 때 힘으로 자가의 주장을 관철하려는 수단이다. 즉, 그 목적은 자기 주장의 관철이다. 그러니까 결과적으로 싸움끝에 나의 주장이 관철되지 못했다면 그 싸움에 이긴 것이 아니다. 전쟁에서 적국의 모든 것을 파괴하고 모든 적을 살해했다고 가정해 보자. 이런 전쟁은 승자는 없고 패자 밖에 없는 것이다.

여기에서 부부싸움으로 돌아가서 생각해 보자. 처음 작은 말다툼에서 시작해서 의견의 일치를 보지 못하게 되어 자기 주장의 강조와 관철을 위해 목소리를 높이게 된다. 이러다가 본래의 자기 주장은 제쳐두고 엉뚱한 감정싸움으로 옮겨가게 된다. 결국 주먹이 오가는 지경이 되어 힘이 센 남성이 주도를 잡았다 치자. 그렇다면 그 남성이 이 싸움에 이긴 사람인가? 이 싸움에는 위에서 말한 전쟁에서와 마찬가지로 아무도 이긴 사람이 없고 싸움에 진 사람밖에 없다. 남편이 싸움의 윤리를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주먹질을 당한 아내의 인격은 짓밟힌 것이고 아내의 인격을 짓밟힌 것은 넘지 말아야 할 싸움의 경계선을 넘어버린 것이다.

서로의 인격을 존중하고 살아야하는 부부간의 근본이 무너진 것이고 아내의 남편에 대한 존경은 물건너 간 것이다. 아내가 남편에 대한 존경이 없어진다는 것은 이 싸움은 오히려 남편이 진 싸움이란 뜻이다.
‘부부싸움은 칼로 물베기’ - 얼마나 놀라운 우리 선조들의 철학인가. 부부가 싸움을 시작하기 전에 칼로 물 베는 싸움, 즉 부부싸움의 정도부터 배우자. 주먹으로 이긴 싸움이 결국에는 모든 것을 잃게 만드는 것이다. 대화를 하자. 대화로 모든 것을 풀어야 하는 지혜를 배워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