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회의실의 대통령 좌석 뒷벽에 큰 소나무 한 그루가 그려진 그림 한 폭이 TV를 통해 비춰져서 볼 수 있었다.
일제 치하에서 우리나라의 독립운동을 도왔던 유명한 친한파 미국인 H.B.헐버트 교수가 지은 대한제국사 서설 (The Passing of Korea)라는 책이 있다. 아이러니 하게도 이 책을 통해 우리 조국에 서식하고 있는 대표적이고 상징적인 나무들을 알 수 있었다.
“…소나무, 대나무, 버들나무, 박달나무, 오얏나무, 그 밖에 참나무, 은행나무, 밤나무가 있다. 그 중에서도 한국의 소나무는 어디를 가나 매우 아름다운 경치를 이루고 있다. 조선의 태조는 자기가 처음 도읍으로 정한 곳을 송도(松都)라고 부를 정도였다. 소나무는 사철나무로서 영생을 의미할 뿐만 아니라 꿋꿋한 의지를 표현한다. 한국의 시나 산문에서 차지하는 소나무의 비중은 서양문학에 있어서 오크 나무에 해당될 것 같다.” 라고 기술되어 있다.
그러고 보니 애국가에도 2절에 “남산 위에 저 소나무 철갑을 두른듯 바람서리 불변함은 우리 기상일세…”로 작사되어 있다.
한편 대나무는 정절의 상징으로 곧음과 믿을을 표현하고 있다. 묵화에서도 고결함이 군자와 같다하여 매화, 난초, 국화와 함께 대나무가 사군자에 포함되어 있다.
언젠가 한국 정치학계 원로인 윤형섭박사가 대학원 강의에서 “세상이 복잡할수록 소나무처럼 살지 말고 대나무처럼 살아야 한다.”라고 한 의미심장한 훈화가 기억이나 새삼 음미해본다. 소나무는 눈이 오나 혹한이 닥치나 항상 푸르고 굳건하지만 태풍에는 부러질 뿐만 아니라 바늘 같은 잎은 친화력이 없고 해충에 약하다.
이에 비해서 대나무는 태풍에 유연하여 부러지지 않으며 매끈한 몸매에 마디마디는 끊고 맺고 해서 절도가 있고 그 속은 비어 있어 욕심이 없고 수용력이 있을 뿐만 아니라 뿌리는 서로 엉켜서 넘어짐이 없고 땅이 갈라지는 것을 막는다.
한반도의 정세가 복잡미묘하게 돌아가고 있다. 이럴수록 우리 민족은 강대국들의 태풍같은 입김에 소나무처럼 부러지지 말고 대나무처럼 유연하면서도 곧곧하게 대처해 나아가야 한다고 본다. 역사적인 예로 태국의 경우 세계 2차대전으로 대부분의 아시아 국가들이 전란의 소용돌이 속에 휩싸였지만 태국은 국왕의 지혜로 대나무처럼 대처하여 전승국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일본으로 부터 많은 배상금을 받아냈다.
즉 1941년 일본군이 영국군을 공격하기 위해 태국의 영토통과권을 위협적으로 요구하게 되는데 이에 대해 국왕은 영·미 대사에게 태국의 입장을 간절히 호소함으로써 일본군들을 통과시켜도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양해를 얻어냈다. 이듬해에는 한술 더 써서 일본군의 강압에 못 이겨 영·미에 선전포고까지 하게 되었는데 이때도 역시 부득이한 상황을 납득시켜 오해가 없도록 했다. 그리고 1944년 일본군이 수세로 몰리자 항일 자유타이 운동을 전개하여 연합군 편에서 게릴라 전을 함으로써 종전후 전승국의 대우를 받았다.
이를 두고 이중 인격체라고 비난할 사람도 있겠지만 나라를 위하는 길이라면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어차피 정치의 본질은 야누스의 두 얼굴이라고 하지 않았는가. 한 손에 문을 열어 줄 열쇠를 쥐고 다른 한 손에 성 밖으로 내쫓기 위한 방망이를 들고 국가를 수호한다는 로마 최초의 태양신이다.
그리고 근세 정치학의 시조라고 일컷는 마키아 벨리도 그의 저서 ‘군주론’에서 “이탈리아의 여러 도시 국가들 중 그가 속하는 피렌체를 위해서는 민주주의가 최선이었고 그것은 개인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반면에 당시 사분오열된 이탈리아를 호시탐탐 노리는 프랑스, 독일, 스페인의 침략을 막기 위해서는 독재군주를 옹립하는 길 밖에 없다”라며 이중성을 역설했다.
북한이 위협적으로 무어라 하든, 중국이 누구 편에 들든 두려워 말고 대나무처럼 사심없이 오직 나라를 위해 유연하면서 곧게 대처해 나아가야 한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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