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의 윤회는 자신이 보석 도적으로 몰려서 묶여 있는 중에도 ‘거위가 보석을 쪼아 삼킨’ 진실을 밝히지 않았다. 그는 단지 거위도 함께 다리를 묶어두어 다른 곳에 도망가지 못하게 해달라고 요구했다. 나중에 거위의 배변을 통해서 보석이 나오자 그제야 그는 주인을 불러서 진실을 밝히고, 자신도 누명에서 벗어난다.
주인이 "왜 진작에 내게 알려주지 않았소? 그랬다면 선생이 괜한 곤욕을 면하셨을 것…" 하며 민망해 하자, 윤회가 대답한다. "내가 하루 전에 알렸더라면 저 거위는 분명 잡혀서 배를 갈려 죽었을 것이오."
이런 일화를 놓고 윤회의 생명에 대한 사랑과 존중이라고 할 사람도 있겠지만, 내게는 진실은 밝히는 것 못지 않게 간직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교훈을 준다. 밝히는 적절한 때와 장소와 상황과 특히 그 동기가 중요하다는 교훈도 준다. 더 중요한 것은 진실의 고정관념적인 해석은 금물이라는 점이다.
조지 부시 대통령은 북한을 ‘악의 축’의 하나로 지명했다. 6.25사변, 무장간첩의 남파, KAL기 폭파사건, 아웅산 사건, 판문점 도끼 사건, 영부인 피격 사건 등등 많은 살상 및 테러 사건의 주범 내지는 배후조정을 한 북한 정권을 "악의 축의 하나"로 표현했다.
다시 묻더라도 "분명 내가 틀린 말했느냐, 이것은 모두 진실이야"라고 부시는 답할 것이다. 문제는 진실여부에 있지 않고, 이 시기에 진실 선언하는 동기가 무엇인가와 왜 이면의 진실 즉, 남북 정상회담, 이산가족 상봉, 금강산 관광, 비료 지원, 햇볕정책은 무시해야 하는가에 있다.
한 아이를 놓고 두 여인이 서로 자신의 아이라고 주장하자 유전자 감정술도 없던 시절의 솔로몬 왕은 그의 지혜로 친어머니를 찾는다. "그렇다면 아이를 반으로 잘라서 반반씩 가져라"고 판결한다. 친모가 아닌 여인은 "예 그렇게 해주십시오, 반이라도 갖겠습니다" 하며 자신을 드러내 보이고야 만다.
친모는 친모의 사랑의 모습을 내 보이는데 "그러면 아이가 죽을 것이니, 차라리 내가 키우지 못하더라도 좋으니 저 여인에게 주어서 애를 살리십시오" 하며 울며 애원한다. 이런 모습을 본 지혜의 왕 솔로몬이 친어머니를 찾아서 아이를 주게 됨은 당연하다.
50여년 전에 한반도를 반동강이 낸 열강들이 이제 와서 회개하며 적극 한국의 평화통일을 도와줄 리는 만무한 일이다. 친어미 자식 보는 심정으로 반동강이 난 한민족을 볼 때는 당연히 평화와 화해, 나아가서는 통일을 염원하게 된다.
온갖 피해를 다 당해온 남한이 가해자인 그 북한과 평화를 유지하고자 하는 이유가 바로 이 친어미의 심정에 있다. 과거의 행적 때문에가 아니라 바로 ‘…임에도 불구하고’ 한민족이 살고 번영하는 유일한 길이기에 하는 일이다. 악동을 악동이라 칭하고 (진실을 밝히고), 한반도를 영구분단 하는 (아이를 반으로 자르는) 것은 친어미가 아닌 개인, 단체, 국가가 하는 일이다.
지난 수년간의 갈등을 통해서 한민족과 한반도의 친어미가 누구인가가 점차 자명해지기 시작한다. 대북 정책에서는 우방과의 공조보다 더 중요한 것이 바로 7,000만 한민족의 지혜와 자각이다. 공조에 매달리는 노예적인 발상은 버리고 공조 파기라는 또 다른 노예적인 사고도 버려야 한다. ‘악의 축’ 언급을 신나서 환영하고 나서는 얼빠진 행동도 자제해야 한다.
반미대모와 같은 충동적인 행동도 삼가야 한다. 남북 관계에서만은 야당도 시민단체도 교민단체들도 정부 비난을 삼가며 말을 아껴야 한다. 어느 정권이 들어서도 지속적으로 해나가야 할 일이기 때문이다. 삼가고 자제한 에너지를 모아서 통일호를 달릴 즈음, 한반도 평화와 남북통일은 한민족의 자각과 외로운 자주 결정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더욱 자명해지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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