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지역에선 전쟁의 먹구름이 유태교와 이슬람교를 뒤덮고 있는 상황에, 미국에서는 섹스 스캔들이 가톨릭교를 휩싸고 있다. 성스러운 사제직을 수치의 구렁으로 몰아넣는 일련의 사건들에 성도들이 겪어야 할 정신적 고통은, 중동 사람들의 생사를 가르는 처지에 비할 수는 없을지라도, 심각하다.
보는 이들의 시각에 따라서 문제의 원인은 참으로 다양하게 드러난다. 이탈리아의 벌톤 주교는 사제들의 개인적 과오임을 강조하면서, 성당자체에 엄청난 보상금을 명령하는 미국의 민사법을 ‘이상하다’고 피력했다.
독신주의라는 제도적 문제점을 꼬집는 사람들도 많다. 사제들의 결혼이 제도적으로 허락되지 않으면 문제는 근절되기 어렵다는 주장이다. 이에 대해 반론도 만만치는 않다. 개신교 성직자들의 묵은 스캔들을 들추어내면서 결혼이 해결책이 아님을 지적하고, 천주교를 개신교화 하려는 음모라는 이들도 있다. 보수주의자들은 더 나아가 낙태와 피임에 대한 가톨릭의 공식입장에 반대하는 이익집단과 언론을 스캔들 확대의 배후로 의심한다.
교황에 의해 호출된 미국의 주교들은 가톨릭내의 진보적 입장을 대변하면서, 권위주의와 비밀을 고수하는 전통적 태도가 문제의 조기 진화를 막았다고 바티칸을 조심스럽게 비난했다.
문제의 원인규명은 다양한 이익에 반추되어 개인적 과오, 독신제도, 배후 음모, 권위주의와 비밀, 그리고 미국문화 사이를 떠돌고 있는 듯이 보인다. 이 같은 상황에서 누구의 말이 맞는지를 편들기보다 한 걸음 물러서서 먼 시각으로 상충되는 견해들의 큰 밑그림을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고대 그리스나 아시아에서는 성을 ‘양생’이란 관점에서 보았다고 한다. 성을 통해서 어떻게 삶을 증진시킬 수 있을지가 주된 관심이었다. 지혜는 에로스와 불가분의 관계를 갖고 있었고, 성행위는 쉬쉬하는 금기라기보다 공공연한 토론거리였다.
그런데 로마제국말기에 오면서, 성의 부정성과 위험성이 부각되었고, 기독교의 유입은 움트는 경계심을 체계적으로 확고히 했다. 육체는 영혼의 감옥이며, 그 육체에 깊이 뿌리박고 있는 성욕은 악의 원천으로 통제되고, 억제되어야 한다고 역설되었다. 중세신학에 대한 회의에도 불구하고 근대사회는 합리적 이성의 숭배를 충동적인 성적 본능의 배척 가운데 확립시켰다.
삶을 고양시킨다고 생각되었던 성은 이렇게 억눌려져서 인간존재의 부끄러운 깊은 비밀이 되었고, 그것이 개인의 비정상적인 성격과 행위를 파악할 수 있는 열쇠를 쥐고 있다고 믿게 된다. 지혜의 빛으로부터 금기와 수치의 어둠 속으로 성이 내팽개쳐졌을 때, 두려움을 동반한 충동적 태도는 어찌하기 어려운 귀결인 듯 보인다.
후기 산업사회의 상업주의는 이렇게 역사적으로 형성된 성에 대한 충동성을 절묘하게 이용하여 소비시장의 구매력을 창출시킨다. 먹거리에서부터 옷 그리고 자동차, 모든 상품들이 성적 호소를 통해 판촉에 나서고 있다.
한편에서는 도덕적 경건주의가 성을 억압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선정적 상업주의가 성에 대한 충동성을 자본화하면서, 상충하는 듯이 보이는 이들은 함께 우리 문명의 두 줄기 DNA구조를 이룬다. 가톨릭 스캔들은 이 숨겨진 상호 의존하는 대립적 공존을 한 눈에 드러내고, 사람들은 그 표면적 모순만을 주목하며 그 위선에 도덕적 경악을 표한다.
성에 대한 권위주의적 배척이 기형적 유혹을 어둠 속에 잉태시키는 한, 성추행이란 언제든 구조적으로 잠재되어진 개인적(?) 과오가 아닌가.
부수적인 위험을 염려하여 자연적 욕구를 마냥 숨기고 억압할 때, 그것은 도착적 환상을 우리에게 씌우며, 마치 앙갚음이라도 하듯 우리의 삶을 더 크게 위협하게 된다.
가톨릭을 휩쓸고 있는 이 스캔들에는 거대한 우리 문명의 숨겨진 억제와 도착의 변증법이 다양한 이해관계에 굴절된채 어렴풋이 투영되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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