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미국 대학 신입생들에게 "자살을 생각해 본 적이 있느냐?"는 설문을 보낸 정신과 의사가 있었다. 그랬더니 놀랍게도 70%이상의 신입생들이 "지난 1 년 동안 심각하게 자살을 고려해 본 적이 있다"고 대답했다. 물론 이들 중에서 ‘자살 기도’나 ‘자살 성공’에 까지 간 경우는 훨씬 적다. 그러나 대부분의 자살 성공자들이 과거에 적어도 한 번 이상 자살을 시도하거나 생각했다는 통계자료가 있음을 고려하면 충격적인 사실이 아닐 수 없다.
미국만이 아니라 서구 사회에서 자살은 무섭게 증가하고 있다. 15~24세 젊은이들의 사망원인이 사고 다음으로 자살이고 그 다음이 타살이다. 미국에서 ‘인간을 죽이는 병’은 더 이상 세균이 아닌 ‘인간 자신들’인 셈이다.
갱년기를 지난 뒤의 남성 어른들, 특히 건강에 문제가 있거나 배우자를 잃은 사람들의 자살율은 껑충 뛴다. 여성들의 경우 성호르몬 분비가 시작되는 사춘기에 부쩍 우울증이나 자살 기도가 많아지는 데 반해서 남성들은 중년기 이후에 우울증이나 자살 기도가 높아진다.
인간은 누구나 살고 싶어한다. 자살은 단순히 살기를 포기하는 수동적인 행동이 아니다. 피치 못할 원인들 때문에 자신을 파괴시킬 수밖에 없는, 자신을 겨냥한 무서운 폭력행위다. 그 원인을 세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 선천적으로 타고난 체질 또는 정신질환으로서 ①주요 우울 증상(Major Depressive Disorder) ②조울증(Manic Depression 또는 Bipolar Disorder) ③합병증을 동반한 주의 산만증(Attention Deficit Disorder) ④술, 마약 남용 증세(Substance Abuse Disorder) ⑤정신분열증(Schizophrenic Disorder)을 앓는 사람은 자살 위험이 무척 높다. 진단을 받고 치료를 받는 도중에도 자살 위험은 있지만 치료를 받지 못한 경우에는 자살이 첫 번째 증상으로 나타나는 수가 많다. (마치 고혈압이 있는 줄 모르고 살던 사람이 중풍에 걸리거나 사망한 후에야 고혈압 진단을 받는 것과 같은 이치다.)
둘째, 환경이나 사회적 조건 또는 대인관계의 문제다. 아무리 우울증을 안고 태어났더라도 마음 편한 고향에서 사랑하는 이들에게 둘러싸여서 사는 동안에는 적응력이 높다. 초기 이민자들은 (미국 대학 신입생들처럼) 아무 도움 없이 벼랑에 서 있는 외로움과 사회의 변화를 감수해야 합니다. ‘차라리 죽고 싶은’ 심정을 많이 느끼게 된다.
셋째, 심리적인 좌절, 자신감의 상실이다. "I am OK"의 감정을 잃어버린다. 분노는 인간의 자연스러운 감정이다. 이것이 적당하게 외부로 표현되거나 승화되면 우리는 정상적인 삶을 산다. 그러나 외부로 발산되지도 방향을 잡지 못한 채 자신에게로 폭발된 분노는 결국 자신을 파괴한다.
"죽고 싶다!" 또는 "죽이고 싶다!"라는 표현은 "도와 달라!"는 호소다. 이들을 재빨리 받아들여 의학적, 사회적 그리고 심리적 도움을 주어야 한다. 그러려면 이민사회 전체, 가족, 교회들이 따뜻하게 이들을 받아들이면서 냉정하게 치료를 유도하는 성숙함을 길러야겠다.
이민 1세들의 도박, 마약, 가족 폭행 등은 일시적인 현상도 한인 사회에 국한된 현상도 아니다. 다른 이민자들과 상담을 해도 한인 사회가 겪고 있는 것과 비슷한 문제를 발견하게 된다. 이들 밑에서 자라난 2세들도 마찬가지다. 이들을 어떻게 조기 진단해 마약이나 갱으로부터 선도하느냐를 정신 의학적 측면에서, 또 한 걸음 나아가서 영적인 측면에서 연구하고 예방해야 할 때가 왔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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