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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인영 <서울경제 뉴욕특파원 >
앨런 그린스펀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이 지난주말 와이오밍주 산장에서 재임기간의 오류에 대한 변명이자 고백을 토해냈다.
그는 통화정책으로 자산거품을 막을 수 없다며, "금리를 급격하게 올릴 경우 경제가 나빠지고, 서서히 올릴 경우 일정시간이 지나 주가가 또 오르게 된다"고 말했다.
그린스펀의 발언은 금리인상이라는 무기를 사용하지 않은채 말로만 주가 거품을 경고함으로써 증시의 거품 팽창을 방관했다는 비난을 방어하기 위한 것으로 들린다. 하지만 실제로 금리 수단이 만능이 아님을 자신의 경험을 통해 인정한 것이기도 하다.
그린스펀은 통화주의자로, 금리와 통화량을 조절함으로써 거시경제의 사이클을 조절할 수 있다는 강한 신념의 소유자다. 지난해말까지만 해도 그는 금리를 급격하게 내리면 미국 경제가 살아날 것으로 믿고 있었다. 그는 지난해 의회 증언에서 "통화정책은 각기 다른 시기에 여러 채널을 경유해 실물경제에 영향을 미친다"고 전제, 금리인하가 결국엔 효과를 볼것이라고 주장했었다.
그러나 지난해 11차례에 걸쳐 금리를 40년만에 가장 낮은 수준으로 내렸지만, 실물경제는 아직 살아나지 않고, 증시는 3년째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16년째 FRB 의장을 맡고 있는 76세의 노익장은 스스로 통화 정책의 한계를 인정한 것이다.
미국 경제가 지난 90년대 10년간 장기호황을 구가하면서 나스닥 지수는 한때 5,300 포인트까지 가파르게 상승했고, 집에서 쉬던 할머니에게까지 파트타임 일자리가 주어질 정도로 완전고용시장이 형성됐다. 그러나 자산거품이 꺼지면서 미국 경제는 지난해부터 경기침체와 1%대의 저성장을 지속하고 있다.
90년대 장기호황은 미국 경제에 다섯 개의 거품을 형성했다. 투자, 증시, 소비, 달러, 부동산이 바로 그것이다.이중 가장 먼저 꺼진 것이 투자 거품이다. 1센트의 수익을 내지 못하는 인터넷 기업에 수억 달러의 자금이 유입되던 투자거품은 21세기 첫해인 2000년에 폭발했다.
뉴욕 증시는 지난 7월에 거의 패닉에 가깝게 폭락했다가 진정됐다. 이번 9~10월에 뉴욕증시 기설이 떠돌고 있는데, 2차 거품 붕괴의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10년간 상승기조를 달려온 달러는 올들어 10% 가량 하락했지만, 미국 경제가 완전하 회복되지 않는 한 앞으로 더 떨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다섯 개 거품 중 아직 버티고 있는 것은 소비와 부동산 시장이다. 지난해 9월 미국이 사상초유의 테러를 겪었지만, 미국의 경기침체가 완만했던 것은 소비가 강하게 버텨주었기 때문이다. 부동산 시장은 경기침체 시기에도 오히려 상승했다. 금리가 내리면서 부동산 시장의 거품은 오히려 커져가고 있는 것이다.
미국 중앙은행 내부에서는 이미 지난해봄부터 통화정책이 실물경제에 미치는 영향력이 과거에 비해 줄어들고 있다는 논의가 제기돼 왔다. 중앙은행 사람들은 ‘M1’, ‘M2’등 통화총량 개념을 사용하며 돈줄을 풀었다, 당겼다 하는 것으로 경기를 조절할 수 있다고 믿기 쉽다.
그러나 통화정책이 만능 요술방망이는 아니다. 증시 투자자들의 탐욕과 패닉, 기업인들의 투자과열 등 사회심리적 현상을 통화조절장치로 막을수 없음을 그린스펀은 고백한 것이다.
문제는 10년 호황의 잔재인 자산 거품이 아직 완전히 꺼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일본은 지난 10년간 자산 거품이 꺼졌지만, 아직도 주가는 내려가고, 3일 현재 닛케이지수는 19년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뉴욕 증시도 일본 증시처럼 상당히 오랫동안 가라앉을 가능성이 크다.
주가가 더 가라앉을 경우 소비의 거품도 가라앉고, 그렇게 되면 미국 경제 회복은 상당한 시일이 걸릴 전망이다.
미국 경제는 언제나 완전하게 회복될까. 글쎄.... 적어도 거품이 더 걷혀 기반이 단단해져야 회복의 힘을 갖는다는 점은 분명하다. 다행스런 것은 과거와 달리 불황과 호황을 넘나드는 경기 사이클의 강도가 약해졌다는 사실이다.
inkim@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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