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9월 11일 월드 트레이드 센터가 테러로 무너져 내릴 때 우리의 충격은 너무나 컸다.
그 충격은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경악과 슬픔, 낙담이었다. 마치 미국이 무너져내린 듯한 무력감과 인류의 문명이 붕괴된 듯한 좌절감이 전신의 힘을 송두리째 빼버리고 말았다.
사람들과 어울리는 일상생활은 물론 밥맛 조차 잃은 심리적 공황상태를 겪은 사람들도 있었다. 희생자들과 가까운 관계에 있는 사람들일수록, 또 사건 현장과 가까운 곳에 있었던 사람들일수록 정신적 피해는 더 심각했다.
보건관계자들에 따르면 뉴욕시민중 150만명 이상이 정신상담을 받아야 할 정도로 심한 타격을 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실제로 정신상담을 받은 사람은 10분의 1인 15만명 정도라고 한다.
충격이 가장 심했던 맨하탄에서는 9만명의 우울증 환자가 발생했다. 충격과 낙담, 좌절로 인한 불안감이 많은 사람들 사이에 확산되어 노스트라다무스의 말세 예언이 다시 나돌았고 테러사건 직후 1주일 동안 서점에서는 각종 예언서의 판매량이 80% 증가했다고 한다.
9.11테러가 테러범들의 소행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미국에서는 유래없는 애국심의 물결이 휩쓸었다. 집집마다 거리마다 성조기가 휘날렸다. 9.11 다음날인 12일 하루동안 소매체인 월마트 스토어에서는 20만장의 성조기가 팔렸고 미국 전국에서 성조기 품귀현상을 빚었다.
테러범을 응징하겠다는 부시대통령에 대한 지지도가 90%로 치솟았고 결국 미국은 아프간전쟁으로 테러정권을 전복시켰다.그리고 이러한 좌절과 슬픔, 분노가 지나간 뒤 미국인들은 이제부터 테러와 함께 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체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언제 어디에서 테러가 발생하여 죽을지도 모를 불안한 생활이 되었기 때문에 인생을 더욱 값지게 살기 위하여 가족의 가치가 새삼스럽게 중요
시 되었다. 또 언제 닥칠지도 모르는 불행에 대비하여 유언을 작성하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테러를 방지하기 위한 규제들이 속출했고 사람들은 테러 방지조치로 인한 교통체증 등 불편을 감수해야 했다.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처럼 큰 불행과 비극, 고통을 겪었지만 사람들은 그 날의 악몽을 떨치고 다시 재기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마치 그라운드 제로의 폐허더미에서 온갖 쓰레기를 치우고 그 자리를 다시 설계하듯이 뉴욕은 되살아나고 있고 미국은 죽지 않았다는 것이다.
테러 직후 많은 사람들은 맨하탄에 가기를 겁냈고 맨하탄에 사는 사람들은 불안에 떨었다. 그러나 지난 한 해 동안 뉴욕을 찾은 관광객은 전년도에 비해 8%나 증가했다. 미국여행을 꺼린 외국관광객은 줄었으나 미국의 타지역에서 온 관광객이 늘었기 때문이다. 또 테러 직후 떨어졌던 맨하탄의 부동산 가격은 1년이 지난 지금 테러 이전의 수준을 넘어섰다.
다행히 추가 테러가 없었던 덕분으로 WTC 주변지역을 제외한 맨하탄의 다른 지역에서는 이제 테러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참으로 세월이 약이란 말을 실감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난 1년을 돌이켜 보면 우리는 테러란 말과 함께 살아온 것 같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고 무슨 일만 터지면 테러가 아닌가 하고 놀라곤 했다. 테러를 방지하기 위한 조치 때문에 테러와는 상관 없는 사람들이 단속을 피해 다니느라고 고생하는 등 테러는 우리 생활에 많은 주름을 남겼다. 더우기 테러로 가족을 잃은 사람들의 아픔은 어떠하랴.
우리가 테러를 이겨내고 재기한다 하여도 우리의 마음에 남아있는 아픔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테러는 이렇게 우리에게 깊은 상처를 남겼다.
개인이나 국가나 이처럼 아픔을 주는 사건을 당하지 않도록 최선의 대책을 강구하는 것이 참으로 중요하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다른 개인이나 다른 나라에 그와 같은 상처를 주지 않는 것도 이에 못지않게 중요한 일이다.
9.11 테러사태는 누구를 막론하고 테러는 결코 정당화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절실하게 깨닫게 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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