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망명 탈북인들 정착에 도움준 서용환 회장·오영균 교수
“동포들의 도움에 어떻게 고맙다는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지난 4월 멕시코를 통해 미국으로 밀입국했다가 체포된 뒤 4개월만에 미 연방 이민귀화국(INS)으로부터 망명지위를 획득한데 이어 미 중서부 1위의 힙합업체인 K-모모 서용환 회장의 도움으로 일자리를 갖게 된 탈북 동포 이철수씨와 이길남씨가 입을 모았다.
먹을게 없어 굶어 죽을 수밖에 없던 극한상황에서 부모를 따라 한 사람(이길남)은 8세 때, 또 한 사람(이철수)은 16세 때 북한을 탈출한 뒤 20~30년만에 맞는 감격이다.
이들 탈북 동포에게 일자리를 선뜻 마련해준 서 회장은 “자유와 빵을 찾아 천신만고 끝에 이 곳에 온 동포를 돕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는 생각에 그들을 만나보니 성실하고 믿음직스러워 선뜻 결정했다”고 말했다.
“마침 한 사람(길남)은 의류소매업을 했던 경험이 있고 또 한 사람(철수)은 운전경험이 많아 각자 경험에 맞는 일을 맡길 계획이다”라는 서 회장은 “이들의 정착을 위해 가족과 같은 분위기에서 물심양면으로 돕는 한편 트러스트 펀드나 후원회를 결성, 두 사람을 도울 수 있는 창구도 확대해 나갈 생각이다”라고 말했다.
지난 9월 초부터 일자리도 갖고, ‘망명자’로서의 첫 사회생활을 시작한 이들은 “동포들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잘 정착하는 모습으로 보답하겠다”며 각오를 다졌다.
한편 지난 4개월 동안 이들을 위해 자원봉사로 통역을 맡았던 오영균 교수(애리조나 주립대학 어문학과 교수)는 그 당시의 상황을 다음과 같이 회고했다.
“지난 5월20일 난민대상 법률서비스 봉사단체인 FIRRP에서 자원봉사로 통역을 도와달라는 E-메일을 받았는데 내용은 북한 사람 2명이 난민수용소에 수감돼 있는데 정치적 망명을 신청하는 것 같다는 것이었다. 다음 날 난민수용소가 있는 플로렌스에서 스잔나 매클레이 변호사와 함께 두 사람을 만나 망명 신청서 작성과 변호를 위한 통역을 맡게 됐다. 수용소 내에 있는 재판장에서 이철수씨의 재판부터 이루어졌으며 그 과정에서 판사가 집중적으로 물어본 것은 ‘미국에서 추방당할 경우 생명에 지장이 있는가’였었다. 스잔나 변호사가 난민과 인권단체의 관련 보고서를 많이 준비해서 제출했고 두 사람 역시 중국에서 체험했던 참혹한 상황을 꾸밈없이 얘기했다. 판사는 놀란 듯 더 길게 묻지 않았다. 재판이 끝나 두 사람과 같이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스잔나 변호사가 나오더니 ‘이겼다’고 말했다. 스잔나 변호사는 마치 자기 일인 듯 눈물을 글썽이기까지 했다. 판사의 휴가 문제로 그 다음날로 예정됐던 이길남씨의 재판이 연기됐지만 별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했다. 망명허가를 받은 뒤 무엇이 가장 하고 싶으냐고 물었더니 ‘이제 마음대로 돌아다녀도 되느냐’(철수) ‘그림을 마음껏 그리고 싶다’(길남)고 말했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오 교수는 “그동안 살아온 과정이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험난했는데도 가슴속에 그런 희망을 품고 있다는 게 인상적이었다”며 “두 사람의 가족들이 모두 행복하게 모일 수 있는 것까지 볼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임은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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