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또 집안 대청소를 했다. 새해 맞기 대청소 제 2주년(?)이다. 꿈같은 크리스마스 계절은 어느새 지나가 버리고 이 무시무시한(?) 새해를 조금이라도 더 떳떳이 맞이하고자 남들은 스키타러 여행 떠나는 방학중에 우리식구는 일심단결해 부산을 떨었다. 물론 끝나면 스키타러 간다는 미끼가 있긴 했지만...
새해 맞기가 국세청 감사처럼 조바심나고 떨리는 이가 나만은 아니겠지. 한 해의 꽁무니까지 와서 어느 날 갑자기 아! 나는 또 한해를 덧없이 잡아먹고 말았는가. 나는 무엇을 했는가하고 덜컹 겁나는 이가 우리의 절반이 넘을까 아닐까 투표를 한번 해봤으면.
이렇게 엎치락 뒤치락 하다가 엊그제 아침 잠을 깨니 문득 한줄기 섬광같이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동이 튼다- 먼 동이 트고 있구나- 나도 모르게 잠이 번쩍 깨었다. 갑자기 방안에 햇살이 가득 쏟아져 들어오는 듯한 느낌이었다.
이렇게 느닷없이 닥친 희망에 나는 감사했다. 낙관주의란 전염성이 강하니 주위의 사람들에게도 보약이 아닌가. 그날 특별히 정성스레 빚은 만두와 떡국으로 저녁 식사를 하며 우리는 서로에 대한 희망 사항과 각자 자신의 새해 목표에 대해 얘기해 보았다.
아이는 예상대로, 공부를 열심히 하고 착한 사람이 될 것, 엄마 아빠를 위해 자주 피아노 연주를 해드릴 것, 집안 일을 좀 더 자발적으로 거들 것등을 아이답게 진지하고 거창하게 말했다. 남편은 그저 좋은 아빠와 남편이 되겠단다. 나는 만사에 더 인내를 가질 것, 그리고 내 탓을 더 할 것을 약속했다. 그리고 속으론 체중을 한 10 파운드 줄일 것 (가능은 없지만!)도 다짐했다.
우리는 각자 자신의 목표를 종이에 적은 후 고이 접어 봉투에 넣고 "2003년 7월 1일 이후에 개봉할 것"이라고 쓴 다음 단단히 봉해서 장속 깊숙이 비장(?)했다. 우리의 진전을 2003년의 중턱에서 가늠해 보자는 뜻에서. 마치 톰 소여와 헠클베리 핀이 소년깽단(?)을 조직하며 혈서로 맹세한 듯한 기분으로...
이 기발한 새해 맞이에 우리 식구는 진심반 재미반으로 선뜻 찬성했는데 사실 나 자신이 지어낸 착상은 아니다. 수 년 전에 "우수(優秀)해지기 위한 투자 (Investment in Excellence)" 라는 특이한 연수 과정에서 배운 것이다.
미국의 많은 대 기업들은 기획운영등 큰 짐을 짊어진 임원들의 기술 향상외에 인격향상에도 많은 투자를 하는 데 이 연수과정이 그 좋은 예다. 개개인의 능력을 최대한 발전시키기 위한 각종 아이디어, 타인들과의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기, 직무와 개인의 행복을 균형있게 지키기 위해 시간과 정신력을 조정하기, 목표를 세우고 달성하기 위해 계획과 반성을 되풀이하기, 각박한 현대 생활에 스트레스를 누적하지 않고 그때 그때 마음을 비우고 평안을 회복하기 등등 얼핏 보면 직업과 무관해 보이는 많은 과제를 다루었다. 마지막 날 연수가 끝나기 바로 전 우리는 스스로의 6개월 목표룰 적은 카드를 냈는 데, 주최자측에서 6개월 후에 바로 그 카드를 우편으로 보내왔다! 그때도 했던 살빼기 약속말고는 대충 다 지켰었지... 정말 우수를 위한 우수한 연수과정이었다.
한 십년도 전에 공금(公金)으로 배운 이 과정을 나는 직무에서나 개인 생활에서 알뜰히도 써먹었다. 지금도 생활이 버거워질 때면 나는 불 꺼진 수업실에서 은은한 음악을 들으며 참선을 하듯 마음을 비우고 무(無)를 생각해보든 그 훈련과정을 마음속으로 되풀이 해본다.
그렇다. 크고 작은 우리 나날의 불화에 내가, 우리가 먼저 내탓을, 우리 탓을 먼저 한다면 이 세상은 더 행복한 곳이 되지 않을까. "너희들 중에 죄없는 자가 먼저 돌을 던져라" 하는 말씀이 있었거늘 우리는 자신을 돌아보기는커녕 돌팔매질에만 치우치는 경향이 너무도 짙은 것 같다.
옛날의 그 과정을 또 복습할 때가 되었다. 새해에는 더 인내심을 키워야지. 부족한 나 자신을 생각해보고 남의 잘못에는 눈감아 주어야지. 불만이 꿈틀거릴 때는 내가 잘못한 것이 모자란 것이 무엇인가를 반성해보며 다시 한번 우수와 행복을 위한 투자를 아낌없이 해야지...
꼬마가 어느새 엄마의 애창곡 ‘해뜨는 집 (House of The Rising Sun)’을 가냘프게 구성지게 연주해주고 있다. 언제 들어도 아름다운 저 멜로디! 한도 많고 설움도 많던 젊은 날의 그 노래! 들을 때마다 봄비 마냥 내 마음을 촉촉이 적셔주며 슬픈 젊은 날의 감상으로 씻어주는 저 노래! 이 감정이 아직도 내 가슴을 휘젓는 한 나는 새해에 슬퍼 않으리! 지난 한 해는 결코 헛되지 않았다. 나는 열심히 살았으며, 내 가슴은 아직도 이렇게 젊고 약동하지 않는가! 아이는 저렇게 훌륭히 자라고 있지 않은가!
희망의 새해여 밝아라. 먼 동이여, 트려면 트려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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