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인들이 웃음을 선사하기 위해 간혹 가짜 콧수염과 가발로 ‘변신’을 하지만, 그렇지 않고서 흔쾌히 위장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래서 우리의 기억에 오래 남아 있는 인물이 ‘이중간첩’ 혐의로 사형 당한 이수근이다.
69년 콧수염을 붙이고 가발을 뒤집어 쓴 채 가짜 여권으로 김포공항에서 홍콩으로 빠져나갔다 체포된 이수근 이야기는 엄청난 충격이었다. 북한 관영 조선중앙통신사 부사장을 지내다 67년 판문점으로 월남해 대학교수와 결혼까지 해 놓고 약 2년만에 홍콩을 통해 캄보디아로 넘어가려던 이수근은 탈출 직전 잡혔고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 등으로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이수근은 이중간첩이 아니라 남한과 북한이 아닌 제 3국에서 살고 싶어한 사람이라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한동안 한국사회를 시끌벅적하게 했지만 진실 여부와 관계없이 이중간첩이란 말은 여느 간첩과 다르게 인식되는 게 사실이다. ‘단순’이 아니라 ‘이중’이란 점이 표적이 된다.
‘이중’에 대한 반감은 비도덕적이고 표리부동한 사람을 칭할 때 쓰는 ‘이중인격’이란 말에도 흠뻑 젖어 있다. 선과 악의 양면을 인위적으로 분리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특수 약품을 만들어 복용해 사악한 존재인 하이드로 변한 지킬박사는 영국의 작가 R. 스티븐슨의 ‘지킬박사와 하이드’의 주인공 이다.
지식인이며 고매한 인품을 지닌 지킬박사였지만 선과 악을 넘나드는 마력에 매료돼 나중에는 약을 먹지 않아도 하이드로 변신해 본래의 선한 모습으로 되돌아가지 못하는 비운을 맞는다. 결국 사람을 죽인 뒤 도주하다 경찰에 붙잡히는 순간 스스로 목숨을 끊고 유서로서 비극적인 삶을 고백하는 지킬박사는 적지 않은 현대인의 자화상으로 투영되곤 했다.
낮에는 초등학교 선생님으로 밤에는 술집접대부로 일하거나, 경찰관이 폭력조직원을 겸하는 경우에도 이중생활로 불릴 수 있다. 아무 생각 없이 ‘투 잡’의 범주에 넣기엔 부담스럽다. 단순히 하나 이상의 일을 하는 것과는 다른 부정적인 함축성을 내포하고 있다. ‘이중인간’이란 말이 듣는 이를 분노케 하는 것도 바로 ‘이중’에 기인한다.
그런데 상당수 한인이 이 ‘이중’의 고리에 꾀여 있다. 이중국적이란 낱말이 통용되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장관 자녀의 국적문제가 불거지면서 이중국적 허용의 필요성을 언급한 것을 계기로, 한국정부의 전향적인 교포정책 마련을 촉구해야 한다는 움직임이 한인사회에서 일고 있다.
우리의 위상과 권익을 제고할 구체적인 정책 방안을 입력하는 데 중점을 두어야 하겠지만, ‘이중’을 삐딱하게 보는 시각을 고려한다면 ‘이중국적’의 ‘이중’을 다른 말로 바꾸는 것도 의미 있는 시도가 아닐까.
<박봉현 편집위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