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는 그동안 몹시 궁금했다. 부시-노무현 정상회담 이후 과연 북한이 어떻게 나올 것인가.
그거야 일단은 강경하게 나오지 않겠느냐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러나 북한이 대응에 따라 한반도의 명운이 좌우될 수 있는 상황에서 걱정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북한이 드디어 입을 열고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한미공동성명이 발표된 지 거의 1주일 만이다.
북한의 첫 반응은 지금 평양에서 열리고 있는 제5차 남북경협추진위원회 기조연설에서 나왔다. 그 내용은 ‘헤아릴 수 없는 재난’으로 집약된다. 남한이 미국과 그런 식으로 행동하면 전쟁이 일어날 수밖에 없고 결국은 남한에 엄청난 피해가 갈 것이라는 협박성 경고다.
북한은 이어 신문과 방송을 통해 미국과 남한을 함께 비난하면서 추후 남측행동을 지켜보겠다 거나 강경발언의 중지를 촉구하는 위협들을 쏟아 놓았다.
그러나 북한의 반응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표현의 강도나 분위기가 전과 같지 않아 보인다. 다소 위세가 꺾인 모습이 역력하다.
그들은 그 속내를 ‘남북경협의 지속’을 강조한데서 드러냈다. 미국과 남한의 공동보조에 대해 비난의 목소리를 높이면서도 경제적 도움은 계속 달라는 것이다.
당장 핵전쟁이라도 일으킬 것 같은 기세로 미국을 몰아 부쳐 오던 북한이 속도조절에 나선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다름 아닌 노무현 대통령의 ‘변신’이다. 지금 북한은 남한을 볼모로 미국과 ‘위험한 핵게임’을 벌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심하게 몰아 부쳐도 남한이 있는 한 미국이 한반도에서 전쟁을 일으키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음직하다. 김대중정권에 이어 노무현정권이 지금까지 보여준 북한에 대한 자세는 북한이 그런 기대를 하기에 충분했다. 더구나 남한내 젊은층의 반미분위기는 그들을 부추기고도 남았을 것이다.
노대통령은 북한의 그런 믿음을 여지없이 짓밟아 버렸다. 북한으로서는 유일한 ‘기댈 언덕’을 한순간에 잃어버린 셈이다.
북한으로서는 그 충격을 수습하면서 도대체 노대통령의 진심이 무엇인지 파악하는 시간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것이 한미공동성명 발표이후 1주일가까이 계속된 침묵으로 나타났다고 본다.
북한도 노대통령이 미국에서 완벽하게 북한 편을 들어줄 것으로 기대한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노대통령이 그동안의 언행대로라면 최소한 미국 사람들에게 할 소리는 하고 올 것으로 기대했을지도 모른다.
따라서 노대통령이 과시한 완벽한 한미공조는 북한의 입장에서는 일종의 ‘배심감’으로까지 느꼈음직하다. 그리고 그것은 미국이 이라크 전에서 보여준 가공할 정밀폭격의 공포를 더욱 현실화 시켰을 것이다.
지금까지 북한측 반응을 보면 북한은 노대통령의 변신이 ‘진심’이든 ‘전략’이든 이젠 되돌릴 수 없는 것으로 판단한 것 같다.
더구나 23일 있을 미일정상회담에서는 구체적인 대북경제제재조치가 나올 것이 확실하다.
중국이나 러시아가 동맹국이긴 하지만 북한의 핵보유에 대해서는 우호적이지 않다. 한마디로 고립무원이다.
이런 상황에서 대미 공세를 강화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갑자기 후퇴할 수도 없을 것이다. 그래서 나온 것이 일단은 불쾌감을 표시해 체면을 유지하면서, 경제적 실익에 대한 협상의 여지를 보이는 것이라고 보여진다.
이런 상황에서 앞으로 예상되는 북한은 선택은 무엇인가.
후세인처럼 계속 ‘마이 웨이’를 고집하면서 최악의 상황까지 갈 것인가, 아니면 적당한 선에서 타협해 경제적 실리를 취하고 말 것인가.
북한은 현 상황에서 전자를 선택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북한 군부가 아무리 강심장이라도 미국의 ‘선제공격’에 ‘맞장’을 뜨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북한이 핵보유를 포기할 것 같지는 않다. 북한정권 입장에서는 자신들의 체제를 수호하는 길은 ‘핵보유’밖에 없다고 보고 있기 때문이다. 핵무기가 있어야 경제파탄으로 갈수록 입지가 좁아지고 있는 자신들의 정권안보를 지켜나갈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북한이 그런 ‘핵’을 포기한다면 대신 ‘정권안보’와 ‘경제지원’을 확실히 보장받으려 할 것이다.
그러나 미국은 이미 북한의 그런 요구를 들어 줄 수 없다고 못박아 놓고 있다.
북한이 설사 겉으로 미국의 압력에 굴복한다고 해도 핵무기개발을 포기할 것으로 보는 전문가들은 없다.
북핵문제와 관련 ‘평화적 해결’보다 ‘추가적 조치’에 더 신경이 쓰이는 것은 그 때문이다.
<본보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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