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개인은 복수의 정체성을 갖는다. 정체성보다는 자아의식이라는 표현이 더 좋겠다. 만약 내가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받는다면 나의 대답은 이러할 것이다:남편, 아버지, 아들, 학자, 선생, 블루칼라 가정 출신, 애리조나 태생, 캘리포니아 주민, 미국인, 고려대학교 졸업생, 그리고 좀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미국계 한국인, 그리고 인간.
집단의 정체성 또한 복수로 상황에 따라 바뀐다. 예를 들어 같은 코리안 아메리칸이라도 1세가 그 자신을 보는 것은 1.5세나 2세가 스스로를 보는 것과 아주 다르다. 한인타운이나 가든 그로브에 사는 한인과 교외 백인 지역에서 자라난 한인은 자아의식이 서로 다르고, 중상층이냐 근로계층이냐, 기독교인이냐 불교인이냐에 따라 각기 다른 자아의식을 갖는다.
코리안 아메리칸의 자아의식은 긍국적으로 한국에 대한 인식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할수 있다. 많은 경우 한국에 대한 개개인의 인식은 한국 역사를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기초하고 있는 데 이 또한 견해가 다양하다.
내가 UCLA에서 만나는 젊은 코리안 아메리칸 세대는 대부분 한국 역사에 대해 아주 피상적인 이해만을 가지고 있다. 단군, 오천년 역사, 세종대왕, 한글, 단일 민족등을 들며 오만스럽다 할 정도로 자랑스러워하는 부류가 있는 가 하면, 당파싸움, 사대주의, 외세 침입으로 점철된 수난의 역사를 들며 스스로를 역사의 희생자로 보는 학생들도 적지 않다. 그외 많은 학생들은 자랑스러움과 수치스러움등 동시에 느끼며 한국적 유산에 대해 혼란스러워 한다.
나는 이런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여러 가지 방법을 쓴다. 우선 오천년 역사니, 단일 민족이니, 당파싸움, 수난의 역사 같은 신화들을 일단 부수려고 애를 쓴다. 아울러 한국역사를 보는 다양한 시각, 즉 일본 식민주의 견해, 한국 민족주의 견해, 서구의 견해등을 소개함으로써 학생들이 고정된 역사관에서 벗어나 스스로 한국과 한국역사에 대한 비판적 이해를 해나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애쓴다.
많은 코리안 아메리칸 학생들은 한국의‘전통적 문화’를 고정되고, 죽은, 혹은 죽어가는 전통으로 여기며 가정내 몇몇 풍습을 제외하면 그들과 별로 상관이 없는 것으로 생각한다.
나는 학생들에게 한국 문화가 역사를 따라 끊임없이 새롭게 바뀌어온, 살아있는 역동적인 과정이라는 사실을 보여주려고 노력한다. 이를 통해 학생들이 새로운 코리안 아메리칸 문화를 스스로 만들어내려고 나설만한 심리적 공간을 갖게 하고 싶은 것이다.
코리안 아메리칸 역사는 1965년 이민법 개정때부터가 아니라 19세기말, 20세기 초부터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코리안 아메리칸 역사를 가르칠 때 이승만, 안창호등 거목들뿐 아니라 하와이 사탕수수밭이나 캘리포니아 농장에서 혹독한 노동에 시달리던 보통의 한인들도 다뤄야 하며, 그리고 초기 이민자들과 그 자녀들이 얼마나 인종적 편견과 합법적 차별에 시달렸는 지도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코리안 아메리칸 역사는 또 미국 사회사라는 보다 큰 맥락에서 보고 가르칠 필요가 있다. 이렇게 역사를 가르칠 때 젊은 코리안 아메리칸들이 미국 사회 속에서 스스로의 위치를 재고해보는 바탕을 갖게 될 것이다.
아울러 지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새로운 코리안 아메리칸 정체성을 이루는 작업이 이미 많은 분야에서 이루어 지고 있다는 점이다. 코리안 아메리칸 문학, 예술, 종교, 그리고 매일매일의 경제 정치분야에서 새로운 정체성 만들기 작업은 이루어지고 있다. 다양한 코리안 아메리칸 정체성들이 가까운 장래에 떠오를 것을 나는 고대하고 있다.
존 던칸 /UCLA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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