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니스의 상인’은 샤일록을 유태인 수전노의 대명사로 만든 작품이다. 베니스의 부호 안토니오는 친구 베사니오의 결혼 지참금을 마련해 주기 위해 샤일록에게 보증을 선다. 자기가 주고 싶지만 공교롭게 5척의 배가 모두 바다에 나가 당장 돈을 구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평소 안토니오를 미워하던 샤일록은 돈을 꿔주는 조건으로 제 때 갚지 못할 때는 ‘1파운드의 살점’을 내놓을 것을 요구한다. 안토니오는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 5척의 배 중 한 두 척만 돌아와도 빌린 돈을 충분히 갚을 수 있노라고 장담하고 이를 승낙한다.
베사니오는 친구 덕에 포샤와의 결혼에 성공하나 안토니오는 배가 모두 가라앉는 바람에 살점을 내놓아야할 처지에 빠진다. 거액을 줄 테니 자비를 베풀라는 애청을 물리친 샤일록은 살점만 도려내야지 한 방울의 피도 흘려서는 안 된다는 포샤의 주장으로 궁지에 몰린다. 거꾸로 기독교도의 생명을 위협했다는 이유로 사형 당할 위기에 처한 샤일록은 고민 끝에 기독교로 개종하고 재산의 절반을 몰수당하는 조건으로 겨우 목숨을 부지한다.
샤일록의 안토니오에 대한 증오는 그가 평소 기독교인이라고 유태인 샤일록을 깔 본 데도 있지만 무이자로 돈을 꿔 줘 샤일록의 고리대금업에 손실을 끼친 것이 더 큰 이유로 돼 있다. 중세는 물론이고 근세에 들어서서도 기독교권에서는 이자를 받는 것을 중죄로 다스렸다. 이는 기독교권에 국한된 현상은 아니다. 지금도 회교에서는 이자 받는 것을 금하고 있다.
‘베니스의 상인’에서 셰익스피어가 수전노 샤일록을 유태인으로 설정한 것은 그가 반유태주의자였다기보다는 금융업 종사자 가운데 유태인이 많았기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 옳다. 기독교에서 볼 때 어차피 그리스도를 죽여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불가능한 ‘이미 버린 몸’인 유태인에게는 대금업이 허용됐기 때문이다.
역설적이지만 그것이 유태인이 유럽 금융 상권을 쥐는 계기가 됐다. 유태인으로 전 세계 금융을 주름잡은 로스차일드 일가를 두고 독일 시인 하이네는 “우리 시대의 신은 돈이며 로스차일드야말로 그 선지자”라고 평했다.
‘베니스의 상인’은 문학적으로도 유명하지만 ‘미래의 불확실성’에 관한 경제적 진리도 담고 있다. 아무리 자신이 있어도 돈 문제를 놓고 생명을 거는 내기를 하는 것은 현명하지 않다는 것이다. 베사니오가 결혼에 성공해 포샤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더라면 안토니오는 샤일록에 의해 불귀의 객이 되었을 것이다.
‘미래의 불확실성’은 이자의 본질에도 직결돼 있다. 똑같은 돈이라도 내 손에 있는 것은 확실하지만 몇 년 후에 주기로 한 돈은 그렇지 않다. 그 불확실성에 대한 프리미엄이 이자인 셈이다. 융자 기간이 길면 길수록 이자가 높아지는 것도 그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물가가 안정되고 미래가 확실한 사회일수록 금리는 낮아진다. 반대로 모든 것이 불안한 사회일수록 높은 경향이 있다. 그러나 금리가 오르는 것이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니다. 경기가 회복기에 접어들면서 자금 수요가 늘어날 경우에도 금리는 뛴다.
지난달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단기 금리를 1%로 0.25% 포인트 인하한 이후 장기금리는 오히려 폭등세를 보이고 있다. 장기 금리의 표준이 되는 10년 만기 연방 공채 수익률은 몇 주 사이 3.1%에서 3.7%로 0.6%나 뛰었다. 그 이유로는 호경기를 예상한 투자가들이 채권을 팔고 주식을 사기 때문이라는 설, 대대적 감세로 연방 적자가 늘어났기 때문이라는 설, 돈에 쪼들린 일본 은행들이 연방 채권을 무더기로 팔기 때문이라는 설 등이 나오고 있다.
이번 금리 상승이 일시적인 것이라는 이야기도 있지만 범위가 전 세계적이고 폭이 큰 것으로 미뤄봐 초 저금리 시대는 이제 끝났다는 분석이 유력하다. 장기 금리는 모기지와 회사채 등 경제 전반에 폭넓은 영향을 미친다. 금리의 급등세가 진정되지 않을 경우 재융자와 주택 시장이 얼어붙고 기업의 자금 조달을 어렵게 할 수 있다. 향후 장기금리 동향이 주목된다.
민 경 훈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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