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7월이면 사이클 경기의 월드 시리즈라고 할 수 있는 ‘투르 드 프랑스’가 펼쳐진다. ‘투르 드 프랑스’는 7월5일에서 시작해 7월27일까지 계속되는 사이클 도로경기로 2,129마일을 20개 구간으로 나누어 프랑스 전국을 일주하는 자전거 마라톤이다.
이 경기는 에베레스트 등산이나 북극 탐험처럼 인간 체력의 한계에 도전하는 성격이라는 점에서 다른 스포츠와는 좀 다르다. 강풍과 비, 찌는 듯한 더위와 살을 에는 찬바람, 알프스와 피레네의 가파른 언덕과 내리막길을 하루평균 5~8시간씩 달려야 하는 육체적, 정신적 인내 테스트다.
동료뿐만 아니라 경쟁자들에게 인심을 잃으면 끝장이다. 매일 200여명이 달리는데 여러 명이 미운 사람 앞을 의도적으로 가로막으면 속력을 낼 수가 없게 된다. 특히 가파른 언덕 오를 때 앞에서 훼방 놓으면 미운 오리새끼의 기록이 엉망이 되어 버린다. 따라서 ‘투르 드 프랑스’에서는 빨리 달리는 것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 참가 선수들의 인심 얻기다.
이 경기를 매일 TV나 인터넷에서 관전하고 있노라면 앉아서 프랑스 전국을 관광하는 기분이다. 누런 밀밭이 끝없이 펼쳐지는 제2구간 세담, 해바라기 꽃밭이 이어지는 제4구간 주앵빌, 알프스의 눈산이 펼쳐지는 제8구간 살랑체, 험한 산악지대인 제13구간, 세계적인 포도주 고장인 제18구간의 보르도 포도원 등 프랑스의 아름다운 전원풍경이 매일 다르게 전개된다.
경기 22일째인 마지막날(7월27일)에는 파리의 샹제리제 부근을 10바퀴 도는 것으로 승부를 내는데 에펠탑과 세느강 등 파리 시내가 한눈에 들어오는 낭만적인 분위기다.
‘투르 드 프랑스’에서는 누가 노란 재킷을 입었는가를 눈여겨봐야 한다. 노란 재킷을 입은 선수가 종합성적 1위로 달리고 있는 선수다. 노란 재킷 사나이의 얼굴은 자주 바뀐다. 오늘 현재 내가 관전하고 있는 제10구간에서는 드디어 미국의 랜스 암스트롱이 노란 재킷을 입었다. 그가 이번에 우승하면 5년 연속 우승하는 것으로 ‘투르 드 프랑스’ 신화의 대열에 오르게 된다. 지금까지 5회 연속 우승은 스페인의 미구엘 인두레인 뿐이다.
그러나 암스트롱의 경우는 우승이 문제가 아니다. 그가 노란 재킷을 입고 선두를 달리는 것만으로도 감격적인 장면이다. 미국 올림픽 대표선수였던 암스트롱은 회생확률이 3%밖에 안되는 암에 걸렸다가 극적으로 살아남은 불굴의 사나이다. 암과 투병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의 투병기 ‘It’s Not About Bike’를 읽기를 권하고 싶다. 암 증세를 모르고 지낸 자신의 무관심에서부터 발견 후 겪은 정신적 고통, 머리로 번져 뇌수술을 받아야 했을 때의 결심, 약물치료의 후유증, 의사 선택의 실수, 가족과의 관계 등 암환자의 절망적인 상태가 실감나게 그려져 있다.
암스트롱은 암 선고를 받았던 1996년 10월2일이 자신에게는 BC(기원 전)와 AD(기원 후)처럼 시간의 의미가 다르다고 말한다. 그가 암을 극복하고 1999년 ‘투르 드 프랑스’에서 우승하던 날은 세계가 감격했었다. 나도 이때 어느 TV에서 제작한 특별프로를 보고 ‘투르 드 프랑스’에 관심을 갖기 시작 했다.
올해는 ‘투르 드 프랑스’ 100년이자 90주년 기념경기다(제 1, 2차대전 때 경기가 중단되었었다). 그가 5연승한다면 의미 있는 승리다. 그러나 그가 우승하지 못한다 해도 세계의 암환자들에게 주는 메시지가 있다. “나를 보십시오. 포기하지 마세요.”
그의 투병은 절망과 싸우는 암환자들에게 용기를 주었다. 그가 경기 마지막날인 7월27일(일) 파리 에펠탑을 거쳐 샹제리제에 골인하는 장면은 상상만 해도 흐뭇하다. 많은 사람에게 희망을 주는 사람-그 사람이 바로 영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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