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추, 쑥갓, 깻잎, 오이…’
우리 집에는 작은 텃밭이 있다. 텃밭에는 상추, 쑥갓, 깻잎, 열무, 오이, 고추, 호박, 도라지 등이 심어져 있다.
올 봄 처음으로 조그만 텃밭을 일구기 시작했다. 어머니가 직접 씨를 뿌리고 모종을 하셨다. 농작물 주변의 풀들을 뽑아주는 김매기도 어머니 몫. 새싹이 촘촘하게 날 때 잘 자랄 수 있게 한꺼번에 솎아내지 않고 복잡한 곳부터 여러 번에 걸친 솎아주기 역시 어머니 담당. 이랑 양쪽의 통로 흙을 포기 밑으로 모은 다음 흙을 끌어당기듯이 높게 만들어 뿌리부분을 덮
어주는 북주기도 어머니가 하신 일이었다. 그래서 우리 집 작은 텃밭은 단순히 채소를 길러내는 밭이라기보다는 어머니의 정원이자 화원인 셈이다.
우리 집 두 딸아이들은 텃밭 물 주기 당번.
아침, 저녁으로 텃밭에 심어져 있는 다양한 채소에 물 주기를 한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아파트에 살면서 물 담은 유리컵에 양파, 감자, 고구마, 콩나물을 키우며 무척 좋아하던 아이들이라 하루가 다르게 자라는 채소에 물주는 것을 무척이나 재미있어한다. 놀이 삼아 물주기에 열심인 아이들의 모습은 어찌나 사랑스러운지 절로 미소가 지어질 정도다.
채소 가꾸기에 엄두도 내지 못하던 나와 아내도 어설프지만 텃밭 가꾸기에 나섰다. 엉성하지만 오이대도 만들었다. 오이를 심은 양쪽으로 나무를 박고 줄을 양쪽나무 위아래로 칭칭 둘러말아 줄기 뻗기를 수월하게 할 수 있도록 했다. 그랬더니 요즘에는 오이대를 타고 뻗어 나가는 오이줄기가 노란 꽃을 피우다 생긴 손가락 만한 오이가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
참으로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오이가 하루하루 다르게 쑥쑥 자라는 것을 보는 재미도 오이를 따먹는 수확의 기쁨 못지 않음도 알게됐다.
수확의 기쁨!
텃밭에서 물만 먹어도 무럭무럭 자라는 채소. 물만 뿌려도 작게 달리는 무공해 열매. 그리고 연하게 자란 상추, 쑥갓, 깻잎, 벌레 먹은 열무를 뜯는 수확의 기쁨. 요즘 우리 가족은 그동안 우리식구 모두의 정성과 사랑으로 자란 상추, 깻잎 따기를 하며 수확의 기쁨을 체험한다.
어머니는 수확의 기쁨뿐 아니라 이웃에게 나주어 주는 나눔의 기쁨까지도 함께 하신다.이처럼 우리 가족은 작은 텃밭이 있어 새로 맛보는 즐거움이 많아졌다. 주말 오후면 텃밭에서 키운 상추, 쑥갓, 깻잎을 따서 삼겹살과 함께 먹는 재미도 새로운 즐거움이 됐다. 농약 없이 자란 무공해 열무로 담근 열무김치를 맛보며 내 손길이 스쳐갔다고 자랑하는 것도 새로운 즐거움이다.
텃밭에서 쑥쑥 자라는 상추는 상추쌈이 있어 즐거운 여름철을 더욱 살 맛나게 한다.보리밥에 고추장 상추쌈을 싸서 한입에 밀어 넣으며 잔뜩 먹고 배를 두들기며 즐기는 재미를 만끽한다. 그저 밥상에 올라온 방금 씻은 파릇한 상추 잎만 보아도 미리부터 뱃속이 넉넉해짐을 느낀다. 아이들과 상추쌈을 먹을 때면 "아주 옛날 몽고에 끌려간 고려 처녀들이 떠나온 고향을 그리며 원나라 궁중의 뜰에 상추를 심었다"는 얘기도 해준다.
무엇보다, 조그만 텃밭은 가꾸다 보니 흙을 만질 기회조차 없었던 아이들에게 땅의 정직함을 가르칠 수 있게 되어 좋다. 상추를 직접 가꾸며 관심을 쏟다보니 중국 문헌에 고려의 상추는 천금을 주어도 구하기 힘들다 해서 ‘천금채’로 기록되어 있다는 사실도 알게됐다.
텃밭의 울타리를 타고 쭉쭉 줄기 뻗기를 하는 호박이 남쪽 오이라 해서 ‘남과’라고 불렸다는 지식(?)도 새로 보충할 수 있었다. 흙을 가까이하다 보니 자연을 소중히 여기고 자연의 정직함과 성실함도 배우게 됐다.
우리 동네에 사는 한인들은 거의 모두가 텃밭을 가꾸고 있다. 도심 아파트에 사는 한인들 중에서도 우유상자 등 다양한 용기나 화분을 이용해 채소를 키우는 가정들이 많이 있다. 푸르름을 즐길 수 있는 정서적 가치 외에도 짧은 기간 내에 직접 수확해서 먹을 수 있는 실용적 가치와 각종 영양소가 풍부한 무공해 식품으로서의 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매력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 우선은 집에서 직접 키운 채소를 먹는 재미와 더불어 자녀들에게는 흙을 만지고 텃밭에 직접 채소를 키움으로써 자연의 신비를 체험하고 땀의 가치를 깨닫게 하며 수확의 기쁨과 생명의 소중함을 느끼도록 하기 위함이 아닌가 싶다.
하루가 힘들고 피곤하더라도 한인가정에 텃밭 가꾸기를 권한다. 내가 직접 키운 상추, 쑥갓, 깻잎, 오이 등을 먹고 쑥쑥 자라는 자녀를 보면 그 동안의 피곤도 한 순간에 사라지지 않겠는가.
chyeon@koreatimes.com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