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국민의 3분의 1이 한국의 안보를 가장 크게 위협하는 나라로 미국을 꼽고 있다고 한다. 최근 6.25 정전협정 50주년을 맞아 한국 갤럽이 전국의 성인 806명을 방문 면접 조사한 결과 한국의 안보를 가장 위협하는 나라로 북한이 58%, 미국이 32%라는 응답이 나왔다는 것이다.
그밖에 일본은 5%, 중국은 2%, 러시아 1%로 소수 응답이었고 특히 20대에서는 안보위협 국가로 미국과 북한이 똑같이 44%를 기록했고 20대 중에서도 대학생의 경우는 미국 49%, 북한 44%로 미국이 한국의 안보에 가장 위협적인 국가로 지목됐다.
지난날 한국과 미국의 관계는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가까운 우방관계였다. 미국이 일제에서 한국을 해방시켰고 6.25전쟁 때는 한국을 지키기 위해 수많은 미군이 피를 흘렸다. 전후에는 미국의 도움으로 한국의 경제가 재건되었고 한국사회의 모든 기틀이 미국식으로 짜여졌다. 지금도 한국과 미국은 상호방위조약으로 국방을 의존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주한미군이 남아있다.
그런데 미국이 한국의 안보에 가장 위협적인 나라라니 도대체 이런 사고방식이 어떻게 나올 수 있을까. 더욱이 배울 만큼 배운 대학생들이 북한 보다 미국이 더 안보에 위협적인 나라라고 하니 참으로 기가 찰 노릇이다. 이와 같은 사고의 변화는 남북관계의 접근과 북미관계의 악화라는 두 가지 사건으로 인해 발생한 것이다.
햇볕정책은 북한을 개혁 개방으로 이끌어내어 변화시킴으로써 한반도의 평화를 이룩하고 나아가서 평화통일의 기반을 조성한다는 취지에서 추진된 것으로 알려져 왔다. 그런데 햇볕정책이 북한을 개혁 개방으로 이끌어 내어 북한을 변화시킨 것이 아니라 남한을 북한쪽으로 개혁 개방시켜 남한을 변화시킨 것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이 한국의 안보에 가장 큰 위협국가라는 말은 북한의 일관된 주장과도 일맥상통하는 입장이다. 북한은 미국이 한반도에서 긴장과 전쟁을 일으키는 위협적 존재이기 때문에 미 제국주의를 몰아내는 것이 통일의 첩경이라고 주장해 왔다.
개인간에 감정이 달라지면 관계가 변하듯이 나라간에도 어제의 우방이 오늘의 적으로 변하는 경우가 얼마든지 있다. 한국에서 미국을 안보위협 국가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계속 늘어난다면 한미관계는 소원해질 수밖에 없고 주한미군의 철수 등 서로 등을 돌리는 사태가 오지 않는다고 단언할 수 없다.
그렇게 되면 한국의 운명도 크게 달라지겠지만 당장 미국에 살고 있는 한인들이 갈림길에서 갈등하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다. 한미관계가 나빠지면 한국이든 미국이든 어느 한편의 입장에 서야 하는 처지가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 뿐이 아니다. 한미관계가 나빠지고 한국 국민들이 미국에 반감을 갖게 되면 재미 한인들을 백안시하거나 적대시하는 경향이 노골적으로 나타나게 될 것이다. 지금 뉴욕 한인회에서 해외동포 바로 알리기 운동을 한다고 하는데 한미관계가 악화되면 그런 운동도 설 자리를 잃게 될 것이다. 최근의 유승준 사건처럼 한국 내에서는 재미한인들을 이미 사시적으로 보기 시작한 것 같은 감이 든다.
한미관계에 변화를 일으키는 두 가지 요인은 앞서 말했듯이 북미관계의 악화와 남북관계의 접근이다. 이 두 가지 관계 속에는 항상 북한이 작용을 하고 있다. 그러므로 북한의 변화, 또는 북한의 붕괴가 이루어진다면 한미관계는 180도로 전환될 수 있다. 이런 점에서도 앞으로 북 핵 사태의 해법은 관심거리가 아닐 수 없다.
이기영 뉴욕지사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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