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미 법정에서 이런 판결을 내렸다. “합의하에 행한 성행위라도 도중에 마음을 바꾸어서 중단을 원할 때 중단하지 않으면 성폭행으로 간주한다” 성행위까지도 이렇게 법으로 규정하려 드는 것을 사람들의 자만이라 해야 할까 무지라고 해야할까, 하여간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미국은 법으로 다스리는 나라이다. 전통도 철학도 약하고, 원로도 없고, 역사도 짧은 곳에서, 다 문화의 다인종이 모여 살다보니 법과 규정으로 다스릴 수밖에 없다. 그러나 법은 인간을 기계화하는 넌센스 판정을 내는 수가 있다. 성행위는 전기 스위치 다루듯이 간단히 켰다 껐다 할 수가 있는 것은 아니다. 롤러 코스터를 타듯이 한번 시작하면 도중에 중단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의 척도로 재면 유죄냐 무죄냐 중에 하나의 대답이 나오게 마련이다. 여기서 법과 인간의 충돌이 일어난다.
무사나 기사는 검을 쓰며 산다. 그들에게는 검을 쓰는 도가 있는데, 이것을 검도라고 한다. 다른 표현을 쓰자면 ‘검이 가는 길’이라 할 수 있겠다. 무술을 닦는 사람에게는 무도라는 것이 있고, 상인들에게는 상도라는 것이 있다. 인간이 가는 길을 인도라고 한다면, 법이 가는 길을 법도라고 한다.
훌륭한 검술사는 칼을 가려서 쓴다. 무술 고단자일수록 무술을 아껴서 쓴다. 명의는 침을 아껴서 쓰고, 약을 쓸 때와 쓰지 않을 때를 가린다. 모두가 자신의 특기를 쓸곳과 쓰지 않아야 할 곳을 가려서 쓰는데, 유독 법만은 현대의 우상처럼 모든 곳에 끼여들어서 인간과 충돌을 한다. 부자간의 갈등에도 가정의 문제에도 양육과 교육에도, 비즈니스에도, 심지어는 환자를 치료하는데 까지도 법이 참견한다. 결과는 법은 살고 사람은 죽는 경우가 생긴다.
법을 휘두르는 사람들은 교묘하게 법을 만들고 법으로 인간사를 판정하며, 법으로 사람들을 때려잡기도 한다. 남북 협상이나 경제 협력은 법의 차원을 넘어서는 사건이다. 총 뿌리를 마주한 원수이자 형제이며, 공산과 반공이라는 이념적 대립, 그로 인한 애증의 갈등을 해결하려고 시도한 사건을 합리와 법의 척도로 재려면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 섹스를 이성을 척도로 재려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법의 척도로 재어서는 정답을 얻을 수 없는 사건들이 세상에는 많이 있다. 그러나 진실과 사실을 규명한다는 미명하에 검사도 부족해서 특별검사까지 동원해가며 정략적인 투쟁을 하는 사람들에게 법은 아주 중요한 도구가 된다. 줄자로 우주의 크기를 재어보아라 할 때 측량사는 당연히 “줄자로 우주의 크기를 잴 수는 없다”며 사양할 것이다. 불행하게도 법으로 세상사를 재어보라고 할 때는 사양할 것을 잊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현대아산회장의 자살사건은 법과 인간의 충돌이라고 나는 본다. 자살의 원인을 우울증으로 매도하려는 자도 있겠지만, 그 정도 스트레스에 우울해지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이 사건에는 일본식의 자결이 더 합당한 표현일지도 모른다.
인간의 가는 길과 법의 가는 길이 서로 상치할 때, 일어나는 정면충돌은 불상사를 일으키게 마련이다. 정회장의 자살사건은 법과 인간의 충돌로 생긴 불상사이다. 그리고 인간의 승리로 끝나리라 본다. 이 사건을 통해서 지도자들은 법을 적용할 사건을 가려가며 선택해야 한다는 교훈을 배울 필요가 있다.
검술사가 칼을 아끼듯이 말이다. 법 이전에 사랑, 철학, 덕, 미래, 애국, 문화, 전통, 민족, 전쟁과 평화 등의 많은 다른 관점에서 남북문제를 볼 수 있다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한다.
정균희/UCLA 정신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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