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은 낙하의 계절이다. 입추는 지났지만 본격적인 가을은 추석 전후부터 시작된다. 추석이란 가을 저녁이란 뜻이지만 추석 저녁에 중천을 향해 떠오르는 ‘달마중’을 잊지 말자는 뜻이기도 하다. 달은 보는 사람 누구에게나 뜬다. 안 보겠다고 등을 돌려도 등에 업혀 따라 온다.
관동팔경의 하나로 꼽히는 경포대 호수에는 “하늘의 달, 호수에 비친 달, 잔잔한 파도에 비친 달, 술잔 속에 비친 달 그리고 벗의 눈동자에 든 달” 이렇게 다섯 개의 달이 뜬다고 율곡 이이가 열 살 때 시흥이 솟구쳐 경포대부에서 읊었다. 박 넝쿨로 덮인 초가집 지붕 위로 떠오르는 달은 또 어떠한가. 모깃불 놓고 숯 다림질하는 정경까지 합치면 다섯 개의 달을 합친 그 이상의 정취가 있을 것이다.‘국 하늘에도 추석 달은 뜰까? 물론 떠오른다. 그러나 추석 달을 못보고 잠든 사람에겐 추석 달은 떠오르지 않는다. 우문우답에 가깝지만 어찌 보면 우문우답이 아닐 수 있다.
나이와 상관없이 연을 만들어 날리는 일도 잊을 수 없는 추억이다. 상대방의 연과 공중에서 곡예를 부리다가 서로 따먹기 시합을 하게되면 얼레에 실을 감았다 푸는 묘기와 때에 따라 얼레를 튀기는 묘기로 상대방의 실을 자른다. 하늘 높이서 바람을 타고 두둥실 떠내려오는 연을 따라 들판을 뛰던 생각이 간절하다.
96 애틀랜타 올림픽 개막식이 열린 주 경기장 상공에 한국의 방패연 하나가 행사 내내 창공을 비행하며 허공무를 펼친 장관을 아는 사람은 알 것이다. 이 연을 만든 주인공은 뉴저지에 거주하는 유재흠(80) 옹으로 유옹을 아는 미국인들은 그를‘연의 사나이’라고 부른다. 강원도에서 오랫동안 농장을 경영하다가 미국에 온 이 할아버지는 한국을 알리는 일을 하고 싶어 자신의 특기인‘연’을 가지고 하늘을 상대하기 시작했다.
추석 송편도 그렇다. 말 그대로 싱싱한 솔잎을 이웃 야산에 가서 따다가 층과 층 사이에 깔고 재래식 시루에 찌는 것이 제 식이다. 송풍이 몸에 좋듯이 송액이 송편에 베고 송편에 솔잎 자국이 나야 송편이다. 중국의 월병보다 얼마나 건강의 지혜가 담긴 송편인가. 염색도 쑥을 삶아 맷돌에 갈아 썼지 물감은 쓰지 않았다.
달의 신비도 우주 과학에 의해 하나 하나 벗겨지고 있다. 아폴로 우주인들의 달 탐사가 그렇고, 그들이 남긴 발자국을 코비 망원경이 볼 수 있다는 것이 그렇고, 혜성을 발견한 미국의 천체지질학자 유진 슈메이커의 유해가 달에 묻혔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달의 신비가 다 없어진 것은 아니다. 달은 아직도 베토벤의 월광곡 속에 있고, 달은 아직도 우리들 향수 속에 있다.“미국의 하늘에도 추석 달은 뜬다”(9/11). 우선 추석 전야(9/10)의 달을 보며 가족끼리 오순도순 송편을 빚어보는 것도 좋다. 달도 차면 기운다고 아직 차지 못한 달을 보는 것도 뜻이 있고, 한국에 뜬 추석 달과 시차의 차도 좁기 때문이다. 그리고 유난히 밝기도 하지만 크게 보이는 추석 달이 희뿌연 구름을 헤쳐 가는 모습이 마치 우리의 삶의 역정과도 같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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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익환/철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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