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타임스는 세계에서 가장 명망 있는 신문의 하나다. ‘회색 귀부인’(Gray Lady)이란 별명을 지닌 타임스의 기사와 칼럼은 예나 지금이나 권위의 상징이다.
1930년대 타임스 ‘스타 리포터’로 이름을 날리던 월터 듀런티라는 기자가 있었다. 그는 스탈린 집권 시절 소련의 실상에 관한 보도로 퓰리처상을 받았다. 스탈린의 식량 무기화로 수백만이 굶어 죽은 기아도 ‘쿨락’이라고 불리던 부농의 대량 학살도 그의 기사에는 없었다. 그의 기사에 따르면 당시 소련은 이상 사회를 향해 온 국민이 힘을 합쳐 나가는 모범적인 나라였다.
그의 기사는 소련의 실상을 호도하는데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루즈벨트 대통령이 그를 백악관으로 불러 치하하고 1933년 미국이 소련을 인정한 것도 상당 부분 그 기사의 공이다. 그는 스탈린과 교류하며 인터뷰하는 ‘영광’을 누렸지만 그의 의도적인 왜곡은 오랫동안 전 세계 지식인들에게 소련에 대한 환상을 갖게 했다.
그러나 이런 보도는 그의 친 사회주의적인 성향에다 문란한 사생활에 대한 비리를 소련이 쥐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사실이 나중에 밝혀졌다. 허위 보도의 전모가 90년대 들어 드러나자 타임스 논설위원회는 특별 사설을 통해 듀런티의 기사가 “타임스 사상 최악의 허위 보도”였음을 시인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스탈린 희생자의 넋을 위로하기에는 너무 늦었다.
지난 9일 LA 한인타운에서 북한 인권 운동가 폴러첸의 강연회가 열렸다. 교회 행사를 빼고는 사람 모으기 힘든 이곳에서 500명에 가까운 한인이 몰린 것도 놀라운 일이지만 기립 박수를 포함, 연설 도중 그가 받은 십여 차례의 박수 열기는 근래 타운 행사에서는 보기 힘든 장면이었다. 불과 9개월 전 같은 장소에서 같은 인물이 같은 얘기를 했을 때 10여명 남짓한 한인이 나와 자리를 지켰던 것과는 너무나 대조적이었다.
그동안 한인 사회에서는 북한 주민과 탈북자의 인권을 옹호하기 위한 단체가 2개나 새로 생기고 이에 대한 한인의 관심도 부쩍 높아졌다. 이와 함께 북한 인권 운동을 왜곡하려는 세력의 움직임도 고개를 들고 있다. 이들에 따르면 북한 인권 운동을 하는 사람은 모두 한반도 평화를 위협하는 ‘미제의 앞잡이’며 ‘전쟁광’이다. 이보다 조금 덜 한 주장이 ‘여기서 북한 인권을 떠들어 봐야 무슨 소용이 있느냐’는 현실론이다.
세상을 움직이는 힘은 세 가지다. 첫째는 무력으로 위협하는 칼의 힘이며 둘째는 금전으로 유혹하는 황금의 힘이고 셋째는 인간의 양심에 호소하는 말의 힘이다. 예수 한 사람의 ‘말씀’으로 시작된 기독교를 비롯, 세계 역사는 가장 미약해 보이는 말의 힘이 길게는 가장 큰 생명력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철옹성 같은 유신 체제를 무너뜨린 것도 결국은 말의 힘이었다.
단테는 ‘신곡’에서 입으로 진리를 왜곡한 자들을 살인자보다 더 깊은 지옥 밑바닥에 떨어뜨렸다. 북한 인권 운동을 헐뜯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짓고 있는 죄의 무게를 잘 상량해 볼 것을 권하고 싶다.
<민경훈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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