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라렛(Claret)은 프랑스 보르도 스타일 드라이 적포도주를 영국인들이 일컬어 부르는 단어이다. 미국에서는 ‘보르도 스타일 카버네 블렌드’ 라고 일컫지만, 이를 한 마디로 ‘클라렛’이라고 짧게 부르는 편이 더 편하기 때문에 와인 평론가들이 클라렛이라는 단어를 애용하기도 한다. 쉽게 말해서 유명한 프랑스 적포도주인 마고, 샤토 라투르, 샤토 라피트 로실드 등이 모두 클라렛이다.
중세에는 꿀과 향신료로 맛을 낸 포도주나 계피, 생강, 후추 등이 가미된 포도주를 말할 때도 있었지만 현대에 와서는 보르도 스타일 적포도주를 일컫는 단어로만 사용되고 있으며, 미국, 호주 등지에서도 카버네 블렌드 적포도주에 ‘클라렛’이라는 이름을 붙여서 생산하는 와이너리를 찾을 수 있다.
지난 7월 브리티시 오픈 골프대회에서 우승한 미국의 벤 커티스 선수가 상으로 받았던 컵 또한 ‘클라렛 저그(Claret Jug)’라고 불리는데 한국의 미디어들은 이를 ‘포도주 주전자’라고 번역하여 보도한 일이 있다. 영국인들은 클라렛을 마실 때 병째, 혹은 디캔터에 담아서, 또는 클라렛 저그에 담아서 마셨는데, 이중 클라렛 저그는 유리나 혹은 유리와 은으로 만들어진 디캔터라고 생각하면 된다. 손잡이와 꼭지가 달려있기 때문에 주전자로 번역된 것 같은데, 고급품 중에는 꼭지와 손잡이가 상아로 된 것도 있고, 보석이 박힌 것도 찾을 수 있다.
17세기 영국인들에게 클라렛은 1주일 정도 숙성된 영(young)한 와인이었지만, 그래도 고급품으로 여겨졌다. 배로 옮겨오는 운반기간을 견디기 위해 주정강화된 와인이었으며 매우 높은 가격에 판매되었다. 17세기 후반부터 19세기 중반까지 영국과 프랑스 사이에 계속된 크고 작은 분쟁으로 영국인들에게 프랑스 와인은 포르투갈의 포트(Port) 와인보다 가격이 세배나 더 비쌌다. 1856년 크림전쟁이 끝나면서 두나라간 교역도 활발해지자 영국인들은 프랑스 와인을 싼값에 구입할 수 있게 되었고 그때 처음으로 당시 ‘가벼운 와인’이라고 불리던 주정강화되지 않은 드라이 적포도주를 맛볼 수 있었다.
클라렛 가격이 내려간 만큼 영국인들이 클라렛 저그에 들이는 공은 점점 더 커져갔다. 심플했던 질그릇에서 은을 입힌 저그로 발전했고 몸통이 더 길쭉해지면서 목도 가늘어지는 등 화려한 치장을 하게 된 것이다. 당시 영국에서는 와인을 병째로 식탁 위에 올려놓는 일은 야만스러운 행위로 여겨졌기 때문에 와인을 옮겨 담아서 식탁에 올려놓을 용기가 누구나 필요하게 되었다.
빅토리아 시대에 만들어진 클라렛 저그는 개구리 입모양의 조각을 꼭지에 달아놓거나, 앵무새 모양 저그에 은으로 꼬리와 머리와 발을 달거나, 원숭이, 악어, 캥거루 모양을 한 저그를 만들어내는 등 그 화려함이 극치에 이르렀다. 빅토리아 시대가 막을 내리면서 좀 더 세련되고 심플한 것을 선호하는 시대가 도래하였고 현재 경매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클라렛 저그는 한 개에 4만5,000달러나 하는 비싼 제품들도 있지만, 대부분 2,000달러에서 6,000달러 사이의 가격에 거래되고 있다. <최선명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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