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덕<주부>
몇일 전 아들의 연주회가 있었다. 어릴 때부터 안 시켜 본 악기가 없을 정도로 극성을 떨던 엄마 밑에서 별별 핑계를 대가며 죽을 동 살 동 도망쳐 다니던 아이가 드디어 독주를 하게 된 것 이다. 절대로 음악을 안 시키겠다는 나의 다짐에 미안했던지, 그렇게 시작한 트럼펫을 껴 앉고 잘 정도로 열심히 했다. 미국에 온 후로는 음악을 한 댔다, 안 한댔다 수도 없이 혼자 반복하더니 이제는 일생을 음악가로 살겠단다.
아들의 성격을 잘 아는 나로서는 다른 분야보다 그 길을 잘 택했다고 생각은 하지만 연주 때마다 받을 스트레스를 어떻게 잘 견디어 나갈 수 있을까 걱정이 되었다. 특별한 재주 없이 음악의 길로 들어서서 연주하러 무대에 설 때마다 힘들었던 나는 결혼과 함께 가정에 파묻혀 살기 원했는데 음악가 부인이랑 사는 것이 꿈 이였던 남편의 지독한 외조 덕분에? 음악을 접을 수가 없었다. 내가 서있는 무대가 남편에게는 기쁨이 됐는지 모르지만 나에겐 보람이나 기쁨보다는 더 큰 두려움이었고 웬만하면 피하고 싶었다.
연주를 앞두고 있을 때 나의 불안감을 아는지, 모르는지, 다른 사람 앞에서 신나게 자랑하는 철없는 남편이 귀엽게 보이기도 하고 차라리 내가 상대방 이였으면 하는 부러움도 있었다. 남 피나게 연습할 때 옆에서 드러누워 음악께나 들었다고 음정이 어떠니, 소리가 어떠니 하는 것이 얄밉고, 때론 화도 났지만 더욱 미웠던 것은 나는 연주가 마음에 들지 않아 빨리 도망치고 싶은데 온갖 사람들에게 인사 받는 모습은 또 얼마나 천연덕스러운지, 그러나 그는 미워할 수 없는 남편이다.
어릴 때 나는 힘들여 연습하고, 부모는 매일 노는 것 같고, 힘들여 연주는 내가 했는데 기분은 가족들이 다 내더니 결혼하고 나니까 그 몫이 다 남편 것이 되었다. 이제 나의 음악생활은 끝나고 아들의 연주를 들으러 다니는데 내가 옛날에 겪었던 감정들을 다 잊어 버린 것 같이 과거 부모나 남편의 모습을 반복하는 나를 보게 되었다. 연주를 끝낸 아들의 감정을 헤아리기 보다 사람들 사이에서 인사하고, 받고, 더 신이 나서 설치는 것 같은 내가 아들 눈에 어떻게 비춰졌을까? 게다가 난 한술 더 떠서 어디가 어떻니 저떠니 잔소리까지 해대지 않았던가? 생각해보니 자괴감이 든다. 하지만 아들이 연주할 때 객석에 앉아 듣는 것이 얼마나 침이 마르게 떨리는지 음악을 제대로 들을 수 없는 것이 부모 마음인 것이다.
연주자에게는 남이 느낄 수 없는 기쁨이라도 있지. 연주하는 것 보다 가족으로써 지켜본다는 것이 훨씬 더 힘들고 떨리는 일이다. 음악을 하겠다는 아들의 연주를 보러 다니면서 이제야 부모와 형제, 남편의 입장을 이해하며, 미안한 마음과 함께 진심으로 고마워하게 되었다. 지금은 옛날에 내가 생각했던 대로 나를 야속하다고 생각 할 아들도 나중에 부모가 되어 자식의 연주를 듣게 될 때 그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 줄 알게 될 것이고, 그래서 연주가 끝이 나면 더 좋아라고 기뻐하는 부모와 가족들의 모습을 이해하게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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