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명<엔니니어>
사람은 감성의 동물이라고 했나? 누구나 자식에 대한 사랑, 부모 형제의 정이 있을 것이고 한번쯤은 이성간의 사랑 경험도 있을 것이다. 하얀 눈이 내리는 날에는 감상에 빠져 누군가를 그리워해 보기도 하며, 비가 오는 날이면 우산을 같이 쓰고 나란히 길을 걸어보고 싶었을 것이며, 차창에 부서지는 빗방울에 그리움의 사연도 만들었을 것이다.
한번쯤은 젊은 시절에 가졌을 로맨스인데, 점점 나이가 들어가면서 그 감성이 무뎌지고 이제는 눈이 오면 길이 미끄러워 차를 어떻게 가지고 나갈까 걱정하고 눈이 녹으면 옷이며 신발이 다 더러워지겠네 하며 투덜거리기도 하고, 비가 오면 날씨가 우중충하네 몸이 여기저기 쑤시네 하며 날씨가 왜 이러나 짜증을 내기도 한다. 물론 다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점점 나이를 먹어가며 연륜이 쌓여질수록 젊은 시절의 감성을 조금씩 갉아먹어 가는 것은 왜일까.
남성보다는 더 감성에 예민한 여성의 경우, 젊은 시절 한 줄의 싯귀에 눈물을 흘리고 떨어지는 낙엽을 보고 있노라면 저절로 눈물이 나오며 입에서는 그렇게 암송했던 시(詩)들이 줄줄이 흘러나왔을 것이다. 눈이 내리면 겉옷도 없이 맨발로 뛰쳐나가 눈을 손바닥에 받아보고 깨끗한 눈 위에 그리운 사람의 이름을 써보기도 하며, 비가 오는 날이면 거리가 내다보이는 찻집에 앉아서 고독도 씹어 보았을 것이다. 그런 여성들이었는데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주부라는 새로운 모습으로 탄생하면서 젊은 시절의 자신을 잃어버리고 집안이라는 울에 갇혀 가족을 위한 희생과 봉사의 삶으로 살아가면서, 나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 갖기가 힘들어지게 된 것이 사실이다.
매일 아침마다 반복되는 한판 승부. 늦잠 자는지 보고 세수는 똑바로 했는지 학교 준비물은 잘 챙겼는지 다시 확인해보고 옷 갈아 입히고 여자아이들은 머리 빗겨주고 밥 차려주고 반찬 골고루 먹으라고 한 소리 하고 양치질은 똑바로 하는지, 남편은 알아서 옷 잘 챙겨 입는지 와이셔츠 입는 날이면 넥타이는 제대로 하는지 양말은 구멍 안 난 것으로 잘 신고 가는지. 일어나면서부터 매 초를 다투는 시간과의 전쟁을 하며 아이들을 학교로 보내고 남편을 회사에 보내놓고 나면 기운이 싹 빠져버리는 오전 시간. 이제 나만의 시간을 가져보려 해도 설거지며 빨래며 시장이며 그렇게 시간에 쫓기니.
지난 겨울비 내리던 어느 날. 평상시처럼 일어난 나는 뭔가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비가 창을 때리며 단잠을 깨운 것은 예사인데 뭔지 모르는 이 느낌. 세면을 하고 식탁에 앉아서야 비로소 그 원인을 알 수 있었다. 거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이 집안 가득 넘쳐나고 있었던 것이다. 덩달아 즐겁고 사르르 떨리는 가벼워지는 마음, 아내는 씨익 한 번 웃어준다. 음악 속에 흘러드는 빗줄기에서 아내와의 지난 시절 추억이 몸 속 깊이 작은 전율을 남겼다면 남들은 웃을지 모르지만, 그래 이런 기분 참으로 오랜만이야. 비의 향수에 푹 빠져 음악에 젖어드는 이 느낌.
아내들이여! 사랑하는 사람과 연애하던 그 시절의 그리움을 되살려보자. 바쁜 일상의 생활에 묻혀버린 나를 서서히 찾아보자. 콧노래 흥얼거리며 음악을 틀어 나의 잠자던 감성을 하나씩 깨워보자. 오늘 아침, 볼륨을 높여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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