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8일, 베이 브리지 중간 트레저 아일랜드에서 베이 만을 바라보면 샌프란시스코 다운타운이 물결 위에 떠있는 대형스크린 속 풍경처럼 아름다웠다. 그지없이 청명한데도 안개 바람은 시리도록 살갗으로 스몄다. 그 추위에도 잔디밭에는 북가주 한글 백일장 어린 문사들이 꼼짝 않고 열심히 글을 써 내려 갔다.
나는 지난 11년 동안 심사에 참여해 왔다. 올해 백일장에서 가장 인기 있는 글제는 ‘어머니 얼굴’이었다. 대부분 어른들은 아이들을 바라보는 것에만 신경 써왔지 아이들이 자신들을 바라보는 것에는 무딘 편인 것 같다.
아이들에게 자신이 어떤 모습으로 각인되는지,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지 한번쯤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엄마 얼굴은 태양이고 아이들은 해바라기다. 어머니 표정 하나 하나에 절대적인 영향을 받고 성장한다.
아이들의 글에서 기억나는 대목을 소개 해본다. “우리 엄마는 이쁜데 왜 화장을 하는지 모르겠다.” “우리 엄마를 남들은 별로라고 하지만 나는 세상에서 제일 예쁘다.”
좀 큰 여학생의 글이다. “나보고는 싼 화장품 쓰라면서 엄마 화장대에 비싼 화장품과 영수증에 입이 딱 벌어졌다. 그러나 자세히 보니 ‘주름 피부 노화 방지’라고 쓰여 있는 영수증을 붙잡고 나는 엉엉 울었다.”
아이들은 어머니의 화난 얼굴을 제일 싫어한다. 어른들은 조금만 참으면 될 일도 화를 냄으로 잃는 것이 얼마나 많은지 모르겠다. “너무 화내지 마세요 주름살 생겨요.”는 애교 있다. “우리 엄마가 화가 나면 입술을 이빨로 물고 있다.”
아이들은 엄마의 사랑을 먹고 자란다. ‘용천 어린이에게’라는 글제도 꽤 많은 어린이들이 선택했다. 저학년 어린이가 쓴 글 중에 “내 어머니는 내가 무릎만 깨져도 속상해 하는데 너의 어머니는 얼마나 마음이 아팠겠니.” 어머니의 사랑으로 남을 사랑 할 줄 알게된다.
어머니의 웃는 얼굴이 단연 최상이다. “우리 엄마는 언제나 웃는다. 내가 잘못해도 엄마는 웃으며 다음에 잘하면 돼 라고 한다. 엄마의 웃음은 세상에서 제일 좋다.”
자녀와의 대화라는 책자에 이런 글이 실렸다. “공부 안 하면 혼날 줄 알아라.” 엄마로부터 닦달 당하던 아이는 엄마가 자리를 비우면 얼른 숨겨둔 만화책을 꺼내 읽는다. 한 어린이 엄마는 노동 일을 한다. 엄마는 집에 돌아오면 구석에 앉아 아이를 웃으며 처다 본다. “엄마 왜 그래?” “응 너를 바라보고만 있어도 엄마는 얼마나 행복한지 모른단다.” 나의 존재가 엄마의 행복이구나. 아이는 혼자 있을 때도 열심히 공부를 한다는 것이다.
타국살이 좀 힘든 일이 있더라도 아이들 앞에서는 웃자. 우리 아이들도 얼굴색 다른 나라에서 사는 게 힘들다. 엄마 얼굴에서 보여지는 사랑으로 그것을 이겨내고 엄마의 얼굴을 통해서 세상을 받아드린다.
나의 어머니는 1950년 아버지가 납북되자 혼자 힘으로 우리 남매를 키우셨다. 그러나 화난 얼굴을 보여주지 않으셨다. 외로운 삶이셨는데도 팔순이 넘으신 지금도 웃으신다.
내가 학교성적을 잘못 받아와도 속으로야 마음 아프셨겠지만 “너는 아버지 닮아 잘 할거야.” 그러셨다. 나는 무엇을 시도해도 중간 성적이지만 쉽게 포기하지 않는 것은 우리어머니가 믿어온 아들의 어떤 가능성을, 나도 부적처럼 믿어오기 때문인가 보다.
이재상/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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