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에서 베이징까지 연결되는 국제선 열차를 타기 위해 시내에 있는 역에 도착했다. 빵공장 건립 합의를 끝낸 사랑선교회 일행을 단동으로 실어다줄 기차는 7월2일 토요일 아침 10시에 출발할 예정이었다. 일주일에 세 번 정기적으로 운행되는 중국 기차다.
역 전과 구내는 중국인과 조선족, 평양시민들로 붐볐다. 밖은 여름 아침 햇살로 화창했지만 역사 안은 어두웠고 여행자들이 나누는 대화로 제법 시끄러웠다.
운전 기사가 두 개의 큰 박스를 들고 왔다. 사랑선교회 평양 방문을 주선했던 신의주의 모 사장이 주는 선물이었다.
지난 밤 안내원이 해외동포원호위원회 최순철 참사가 배웅을 나올지 모르겠다고 했는데 뜻밖에 최 참사 뿐 아니라 김관기 국장도 모습을 나타냈다. 짧게 인사를 나누고 최 참사와 김 국장은 떠났지만 안내원 리씨는 사흘간 함께 평양을 돌아 다니는 동안 우리와 정이 들었는지 기차 안까지 짐을 옮겨주고 마지막까지 창밖에서 손을 흔들며 작별을 아쉬워했다.
사랑선교회 일행이 타는 칸은 외국인 전용 침대칸이었다. 북한 주민들이 이용하는 객차는 뒤에 따로 붙어간다.
사실 열차 여행은 사랑선교회 대표단이 가능할까 하는 생각에 기대하지 않았던 특혜(?)였다.
우선 해외동포에게 기차 여행을 허락하는 경우가 거의 없는 것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랑선교회 대표단이 중국 단동에 갈 일이 있기 때문에 기차로 돌아갔으면 좋겠다는 의사를 표시하자 안내원은 “예약이 안돼 있기 때문에 표를 구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며 곤란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틈틈이 시간을 내 좌석이 있나 알아보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전 날에는 “무조건 표 값에 팁을 얹어 매표원에게 디밀었다”며 “표를 구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역시 당일 표를 구입하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천천히 역사를 빠져 나간 기차는 ‘간리’와 ‘순안’을 거쳐 ‘어파’ ‘영봉’ ‘문덕’을 지났다. 생소한 이름들이었다. 신의주에 도착할 때까지 정차한 역은 몇 개 되지 않았다.
역에 설 때 마다 식량 자루를 등에 진 많은 북한 주민들이 타고 내렸다. 남성보다 여성이 훨씬 많았다. ‘농민 시장’ 혹은 ‘장마당’이 우리가 알고 있는 것 이상으로 활성화되고 있다는 느낌을 줬다.
차창으로 스쳐 지나가는 풍경은 언뜻 보기에 한국 여느 농촌과 다를 것이 없는 것 같았지만 사람들은 지쳐 있었고 남루했다. 길거리나 그늘 진 곳에 누워 자거나 앉아 있는 사람들이 자주 눈에 띄었다. 7월인데도 이제 막 모내기를 끝낸 논들이 보였다.
몇 년 전 대형 열차 폭발사고가 났던 용천에 당도했다. 겉 보기에 말끔한 4-5층 높이의 새 아파트들이 줄지어 들어서 있었고 사고 현장은 깨끗하게 복구된 모습이었다.
드넓은 용천 들판을 보며 놀라와 하자 옆에 있던 조선족이 “북한에서 가장 넓은 평야 지대”라고 설명해줬다.
신의주역에서는 세관 검사를 위해 두 시간 이상 머물러야 했다. 여권을 조사하는 북한 병사는 10대 후반의 어린 모습이었지만 중국인에게 유창한 중국말로 질문을 던질 때의 눈매는 매우 날카로워 보였다. 하지만 우리가 미국에서 온 동포라는 것을 알고 나자 “안녕히 가시라”며 온순한 말투로 인사했다.
우리를 기다리고 있던 두 명의 북쪽 사람들과 신의주 역사 2층에 있는 다방에서 차를 마시며 담소를 했다. 서 너 개의 당구대에서 젊은 남녀들이 게임을 즐기고 있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난 후 누군가가 “기차가 출발하기 전에 내려가야 되는 것 아니냐”고 하자 북쪽 사람은 “우리가 타기 전에는 안 떠난다”며 안심시키는 것이었다. 그의 말대로 사랑선교회 일행은 기차를 놓치지 않았고 압록강 철교를 건너 중국 땅을 다시 밟을 수 있었다.<계속> <이병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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