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종민
고향에 돌아온 날 밤에 내 백골이 따라와 한 방에 누웠다. 어둔 방은 우주로 통하고 하늘에선가 소리처럼 바람이 불어온다. 어둠 속에 곱게 풍화작용하는 백골을 들여다보며 눈물 짓는 것이 내가 우는 것이냐 백골이 우는 것이냐 아름다운 혼이 우는 것이냐 지조 높은 개는 밤을 새워 어둠을 짖는다. 어둠을 짖는 개는 나를 쫓는 것일 게다. 가자 가자 쫓기우는 사람처럼 가자 백골 몰래 아름다운 또 다른 고향에 가자. (윤동주의 시 ‘또 다른 고향’ 1941. 9.)
언젠가부터 내 마음속에도 고향이 생겼음을 발견하였다네. 나의 고향은 한국이었네. 그리고 서울이었네. 나의 고향은 또 미국이었고 샌프란시스코이었네. 언젠가부터 나의 고향은 이제 지구가 되었고 우주가 되었네. 나의 고향은 사실 생명 또는 죽음 그 자체였네. 나는 이 적나라한 사실에 혼자 미친듯이 흐느끼고 눈물을 줄줄 흘려가며 울을 때도 또 웃을때도 있네. 사실 나는 서울에 살때만해도 고향이 없었다네. 친구들이 방학때 모두들 고향에 내려간다고들 했을때 나는 서울한복판에 혼자 남아 여름 내내 그리고 겨울 내내 청계천 헌책방길을 오르락 내리락 할때만 빼면 매우 쓸쓸하였네. 친구들은 편지한장 내게보내지 않았지만 나는 그들이 오붓하게 고향에서 내가 꿈도 못꾸는 재미를보고있음을 알고있었네.
나는 그들의 얼굴이 고향에 다녀올때마다 겨울엔 더 뽀얘지고 여름엔 더 까무잡잡지며 윤기가 자르르 흘렀고 똘똘해졌음을 느꼈네. 친구들은 고향에서 돌아왔어도 내게 그들의 고향에대하여 말하지않았네. 그들은 내가, 바다에 대한 시를 썼지만 바다는 백과사전을 통해서만 알고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있었다네. 나는 이렇게 한때 오랫동안 고향이 없으면서도 고향 상실병에 걸렸있었네.
언제인가부터 나는 나도 모르게 내게 여러개의 고향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네. 희망이라는 것은 그저 존재하는게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가슴 속에 희망을 가짐으로써 생겨나게 되는 것처럼 그렇게 나는 내가 만들어놓은 디자이너 고향도 가졌다네. 이렇게 고향을 함부로 다루어야될지 나는 모르겠네. 단지 내게 고향이 있다는사실이 내겐 희안한것이라네. 내게 있어서 고향은 세계와 나의 자아 사이의 분열이 없는 세계라네. 왜냐하면 내가 태어나고 자란 장소의 개념을 벗어나 현실세계에서 벗어나 꿈꿀수 있는 진정한 쉼터로써 내 머리속에 존재하고있기 때문이라네. 그러나 나의 고향은 이제 더이상 그저 나 혼자 막연히 가지는 효과없는 희망은 아니라네. 혼자서 가지면 그것은 감정적인 유대와 공동체의식, 그리고 자기동일성, 존재와 삶의 근원까지도 상실하며 누구에게도 아무런 효과를 발휘할 수 없는 것이기때문이라네. 그리하여 나도 이제는 가끔 원하는 고향을 성지처럼 때 맞추어 찾아가고 고향의 소중함에 감사한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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