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봉 (수필가, 환경엔지니어)
벗이여. 길림을 떠나 샹하이로 향합니다. 샹하이와 인접한 두 성(省), 강소(江蘇)와 절강(浙江)은 옛 부터 자연 환경이 비옥해 쌀과 생선의 고장(魚米之鄕)이라고 한다지요. 양자강이 서해로 빠져나가는 기름진 삼각주에 쌀 농사가 성하고, 해물이 풍성해 내륙보다 윤택함을 자랑하는 곳입니다.
비행기에서 내려다보니 대륙에서 3번째로 크다는 호수, 태호(太湖)가 상하이와 인접해 있습니다. 이 담수호를 끼고 수천 리 밖 북경까지 연결된 대 운하(The Grand Canal)가 넓직한 강같이 흐릅니다. 운하를 따라 유서 깊은 명승 고도(古都)들이 보석처럼 박혀있지요.
토목사(土木史)를 보면, 대 운하는 만리장성과 함께 고대중국 공학의 2대 불가사이로 꼽힙니다. 세계 최장의 물길은 중국 5대 강을 모두 가로지르며 총 1,800킬로를 남북으로 뻗어있지요. 파나마와 수에즈운하를 합친 것 보다 훨씬 깁니다. 600년 경, 수나라 양제가 확장했는데 3백만이나 희생된 대 역사였습니다. 이 때문에 수나라는 망했지만 대 운하가 후세에 끼친 공은 지대하지요. 쌀 수송뿐만 아니라, 남북의 문화교류와 지방 경제의 활성화로 통일 중국을 이루는 중요한 인프라가 된 것입니다.
벗이여. 이 곳에 오면 누구나 연 나라 시인 양차오잉(揚朝英)의 시구를 듣습니다. 하늘에는 천국이 있고, 땅엔 소주와 항주가 있다”과연 소주는 집 앞까지 찰랑이는 물길과 그 운치로 인해 동양의 베니스란 별명이 걸맞아 보였습니다. 50개가 넘는 아치형의 다리를 뽐내는 보대교와 졸정원(拙政園)의 명소도 아늑한 낙원에 핀 연꽃처럼 돋보입니다.
항주, 또한 비단과 자수, 용정차(茶)로 알려진 우아한 고도입니다. 공해로 시달리는 주변도시들에 비해 이곳은 아직도 옛 경관을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이곳 서호 호숫가에 서면 조석으로 좋고, 비오는 날도 좋고, 춘하추동 좋다더니 과연 수양버들 뒤에 숨은 소저(小姐)들의 미소가 느껴지는 듯합니다. 이 지방에서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미인들은 찻집의 노래하는 소녀, 운하에 배 띄우는 처녀, 자수 놓는 소녀, 그리고 뽕 기르는 비단소녀라고 누군가가 귀뜸 하였습니다.
K형, 땅이 비옥한 이곳에 음식문화 역시 푸짐했습니다. 여행 중 들른 찬청(餐廳, 음식점)마다 먹거리와 사람들로 만원입니다. 장시간 떠들며 지저분하게 먹어야 주인에게 예를 갖춘다는 풍습하며, 산해진미의 양 또한 놀랍습니다. 청나라 건륭제가 2백가지 요리로 차렸다던 그 만한전석(滿漢全席)의 답습인지 요리행렬이 끝도 없습니다.
중국 정찬(正餐)은 역시 균형과 조화를 중시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격식을 갖춘 식사란 육해공을 망라한 소, 닭고기와 해물에 야채와 탕까지 적절히 배합해야 한다지요. 그러고 보니 우리가 들린 찬청마다 음식 가지 수가 다양해도 겹치지 않음이 이해가 됩니다.
팽조(烹調)라고 들어보셨어요? 가이드 유양이 설명해 주었습니다. 화(和)사상을 바탕으로 요리를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린 중화요리법입니다. 식단을 짤 때부터 그 날의 기후, 형세, 운수 등을 고려할 뿐 아니라, 요리할 땐 색, 향, 맛, 모양, 촉감의 조화를 위해 재료, 조미료, 화력 등의 조절에 정성을 다 쏟지요. 먹는 순서도 찬 것에서 더운 것으로, 다색에서 단색으로, 담백에서 기름진 것으로 옮겨가며 마지막 디저트로 탕과 과일을 들어 균형을 완성합니다.
K형, 중국은 이제 먹는 문제는 해결한 듯 보였습니다. 1959년 모택동의 대약진 운동의 실패로 2천 4백만 명이 아사한 나라. 불과 80년대만 해도 하북 지방의 극심한 가뭄으로 1천 4백만 명이 굶주렸던 극빈국이었는데 이젠 음식 걱정은 없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요순 시대부터 중국의 성군(聖君)은 백성을 잘 먹이는 군주라고 했는데 국민을 배부르게 해준 등소평은 중국의 진정한 성군이라 할 수 있겠지요. 의식주가 아니라 식의주 - 먹는 것이 최우선인 중국 땅에 비로소 어미지향(魚米之鄕)의 윤택함이 흐르는 게 보였습니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