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은 레임덕(권력누수)을 막기 위해 유시민 의원을 서둘러 보건복지부 장관에 내정했다지만, 레임덕은 이미 심각한 지경이다.
유 의원이 누군가. 지금 여당에서 정치적, 정서적으로 노 대통령과 가장 가까운 사람을 꼽으라면 단연 유 의원이다. 노 대통령은 대선 투표일인 2002년 12월19일 밤 당선이 확정되자 소속 당인 민주당을 제쳐놓고 유 의원이 이끌던 개혁국민정당을 먼저 찾아가 마음에서 우러나는 고마움을 전했을 정도다.
이렇게 대통령이 좋아하는 사람을, 인사권을 갖고 있는 대통령이 입각 시키겠다는데 여당 의원들이 가로막고 나선 것 자체가 예전 같으면 상상도 못할 하극상이다.
노 대통령도 이를 알고 있다. 1ㆍ2 개각을 통한 집권 4년차 내각은 전형적인 ‘레임덕 방어 내각’이다. 20명 국무위원 중 여당 출신 또는 청와대에서 일했던 사람이 16명(80%)이다. 정치적으로 믿을 수 있는 사람 위주로 내각을 구성하는 게 레임덕 정권의 공통점이지만, ‘80%’는 노 대통령의 위기감이 보통 이상임을 알게 한다.
앞으로 청와대에 대한 여당의 반기(反旗)는 갈수록 잦아질 것이다. 지지율 20%대로 집약되는 대통령의 국정운영 스타일을 그대로 용인했다가는 당장 5월 지방선거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는 인식 때문이다.
정동영 고문이든, 김근태 고문이든 실세 당 의장이 2월에 등장하면 당청간 긴장은 더욱 높아질 것이다. 지방선거에서 지면 용도폐기 위기에 처할 수도 있는 이들에겐 대통령 보다 국민여론이 먼저다. 첫번째 충돌 포인트는 민주당과의 통합문제로 보인다. 달라질 것 같지 않은 대통령과 살기 위해 다른 길을 가려는 당이 부딪히는 과정에서 ‘대통령 탈당’, ‘분당’ 등 온갖 험한 말이 나올 것이다.
하지만 속단은 금물이다. 갈등의 이면을 간과해선 안 된다. 당청은 겉으로는 싸우지만, 서로가 없으면 무너지는 관계다. 따라서 대통령이 여당을 나가거나, 여당이 쪼개질 확률은 최소한 지방선거 전까지는 제로다.
노 대통령이 탈당한다면 정치적 사고무친이 될 가능성이 높다. 여론의 지지도 낮은데 탈당을 해 통치권을 받쳐줄 세력마저 사라지면 대통령은 아무 일도 할 수 없다. 2년간 ‘식물 대통령’이다.
여당도 마찬가지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민주당과 통합을 해도 모자랄 판에 일부 세력이 마음에 안 든다고 당을 깰 바보는 없다. 한나라당이라는 강력한 공동의 적 앞에서 분열하는 것은 공멸이라는 걸 다 안다.
결국 청와대와 여당의 레임덕 게임은 때로는 격하게, 때로는 위험하게 보이겠지만 여권의 울타리 안에서, 지방선거 승리라는 이심전심의 목표 아래 진행된다고 봐야 한다.
당청이 의도적으로 갈등 수위를 임계점까지 끌어올릴 것이라는 관측도 같은 맥락이다. 갈등이 가파를수록 극적 반전의 효과가 커지기 때문이다. 여권에는 이런 이중적 상황을 관리할 연출가도 적지 않다. 노 대통령부터가 둘째라면 서러운 승부사다.
게임의 결말은 여당의 위상 회복일 것이다. 노 대통령은 여당을 찍어 누를 힘이 없을 뿐 아니라, 선거를 치러야 할 여당의 기를 살려주는 게 전략적으로도 맞다. 3년간 대통령을 뒤치다꺼리하다 동반 침몰했던 여당의 모습에 비하면 불과 몇 달만의 드라마틱한 변신이다. 위기는 기회와 통했던 한국 정치의 역동성이 재현되는 셈이다. 한나라당의 40%대 지지율은 이제 떨어질 일만 남았다.
유성식 정치부 차장 ssyo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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