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중 회장의 판결소식을 읽으면서 대우그룹에 18년을 근속한 사람으로서 착잡한 마음이다. 이제는 대우를 떠난지 6년이 다 되어 자유로운 처지에서 김 회장에 대한 기억을 나누어 보고자 한다.
94년 대우 기획조정실에 근무할 당시 일본 도시바그룹과 합작사업 추진을 위해 양사의 톱 매니지먼트 11~12명이 참석하는 비중 있는 회의를 대우측 실무자로서 준비한 적이 있다. 저녁 9시 어젠다 보고를 받은 김 회장은 사장들의 의견을 물어 몇 가지를 수정할 것을 지시했다. 다음날 아침 7시까지 보고하라고 한다. 그 분은 주말이건 밤중이건 일을 하는데 시간을 생각지 않았다.
어렵사리 수정을 끝내니 새벽 2시 반. 집에 들러 잠시 눈 붙이고 다시 차를 달려 부평사무실에 6시 반에 도착하여 비서실에 들어가니 김 회장은 이미 간편한 차림으로 나와 차를 마시며 집무하고 있었다. 환갑이 채 되지 않은 나이인데도 머리는 백발에 거의 빠져 버리고 허리가 구부정하게 70 노인을 연상케 할 정도로 분골쇄신하는 김 회장을 보며 당시 30대였던 나는 한가하게 피로를 호소할 수 없었다. 일을 하면서 자신을 돌아보지 않았던 김 회장의 이와 비슷한 일화는 대우 동료들에게서 수도 없이 들을 수 있다.
그 분은 사리를 채우는 일엔 관심이 없었다. 도무지 오락이라고는 할 줄 모르며 흔한 골프장 한번 간 일없고 술은 입에 댄 적도 없으며 여자관련 스캔들 같은 것은 있을래야 있을 수도 없다. 그런 일이 있었다면 혹 부인은 속일 수 있을지 몰라도 주변 사람들은 알게 되어 있다. 한국의 회사원들은 깨어있는 시간의 대부분을 동료들과 함께 하기 때문이다. 김 회장의 유일한 오락이 있다면 일 끝나고 들르는 사우나와 리비아 등 해외 건설현장 갔을 때 잠깐 틈나면 비디오를 보는 것이 전부였다.
대우그룹이 해외투자가 활발했으므로 해외자산이 많았던 것은 사실이고 그 자산들은 대우가 갖고 있던 크레딧에 의해 상당부분 은행 부채로 충당되어 있었다. 대우는 그만한 신용을 갖고 있었기에 은행차입이 가능했다. 그런데 나라가 환난을 당하여 국가 신용이 추락하니 은행들은 원금상환을 요구했고 대우는 유동성 위기로 부도를 맞고 말았다. 과잉투자나 수익률 저하 등의 내부적 요인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기업을 경험한 사람이면 누구나 알듯이 가진 자원의 효용을 극대화하고자 안간힘을 쓰다보면 기업은 늘 부도의 가능성을 안고 돌아가게 되어 있다. 불행히도 대우가 당시 맞았던 재무적인 위기는 회사가 구축하고 있던 위기관리 능력 한계를 훨씬 초월한 수준의 것이었다.
자신을 돌보지 아니 하고 나라를 사랑했고 회사를 사랑했으며 직원들에게 가족 같은 애정을 가졌던 김우중 회장이 국가적인 경제범죄를 저지른 죄인으로 판결 받고 나니 안타까운 마음 금할 수 없다.
서공렬/ 컬럼비아, 메릴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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