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마지막 주에는 학교에서 졸업식을 했다. 지난 4년간 학생들은 몸부림을 치듯 날갯짓을 하다 이제 고등학교라는 틀을 벗어 던졌다. 대학을 가든 못 가든 빨리 이 순간을 벗어나고 싶어 안달하는 학생들을 지켜보면서 끝까지 최선을 다하자고 달래며 협박을 하면서도 정작 본인들은 얼마나 불안할까 하는 생각에 나의 판에 박힌 격려가 무색했을 정도였다.
소수의 학생들은 소위 말하는 명문 학교를 들어갔고 대다수의 보통 학생들은 각자의 길을 갔다.
끝까지 학점 관리에 신경 쓰라는 소리를 건성으로 듣다가 그냥 재미 삼아 넣어본 학교에 덜컥 합격되는 바람에 한 여학생은 낙제한 수학과목 때문에 내게 불려왔다. 나는 대학에 합격되었다는 이유만으로 무조건 수학교사에게 C학점 이상을 달라고 떼쓰는 것이 참 무리라는 생각을 했다. 그 과목으로 인해 합격이 취소될 위기였지만 그동안 학점 관리에 소홀히 했던 점에는 학생 역시도 책임이 있으므로 여름방학에 보충할 수 있는 기회를 달라고 대학 측에 편지를 쓰라고 했다.
어떤 학생은 다른 교사를 데리고 와서 AP과목의 D학점으로 인해 장학금을 못 받게 될지도 모르니 무조건 C학점을 받게 해달라고 했는데 역시 별 좋은 모양새는 아니었다. 모두가 학생을 위해 하는 일이면서도 정작 본인들은 태평이고 오히려 옆에 있는 교사들이 나서서 선처를 부탁하는 것이 너덜너덜한 변명처럼 궁색하게 느껴졌다.
9학년과 10학년 2년 동안 전과목 낙제에 학교 출석일수보다 결석일수가 더 많았던 한 여학생은 11학년이 되서야 뒤늦게 철이 들어 마지막 일 년은 밤 9시까지 졸업 필수과목 보충을 위해 성인학교에 가서 학점을 만회하느라 마지막 순간까지 가슴 졸이며 가까스로 졸업 문턱을 밟았다.
또 평범하게 공부하던 한 여학생은 평생의 한번이니 실력에 맞는 학교 몇 군데를 더 넣어보라는 나의 조언에도 불구하고 UC계를 3군데만 달랑 지원하여 모두 떨어지고 실망하였는지 졸업식장엔 나타나지도 않았다.
12학년 원서를 써야 할 무렵 보따리 싸서 집을 나간다고 엄마와의 정면충돌도 불사했던 한 남학생은 졸업식엔 멀쩡히 나타나 씩 웃으며 나와 눈 마주치기를 못내 쑥스러워 했다. 그 당시 어머니의 표현을 빌자면 정말 아슬아슬하게 그런 감정의 순간을 넘기기가 힘들었는데 그것도 잠시 이제는 의젓한 아들이 되었다며 웃으셨다.
장학금을 주면서 알게 된 한 학생은 졸업하기 3주 전에 알게 되었는데 그는 몇 군데의 위탁가정을 전전하면서 졸업 2달 전 우리 학교로 전학을 왔다. 4년을 있어도 기억을 못하는 학생이 있는가 하면 알게 된지 3주만이라도 이 학생은 또렷이 내 기억 속에 남아 있다. 더 이상 나쁜 길로 가지 않을 거라는 그의 중얼거림을 귓전에 흘리며 앞으로 지난날은 잊어버리고 타주의 대학에 가서 다시 새 출발하라는 나의 당부가 얼마나 위로가 될지 미지수이지만 나는 그가 잘 되기만을 바랄 뿐이다.
이렇게 몸부림을 치며 지난 4년을 함께 했던 이들은 이제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빛나는 졸업장 하나 달랑 들고 학교 문을 나서며 성인이 되었음을 공표했다.
성인이 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들은 아는지 모르는지 부모에게 간섭받지 않고 원하는 시간에 일어날 수 있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 만세를 부르는 것이 부럽기조차 하다.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그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은 강인한 의지, 풍부한 상상력과 그리고 불타는 열정을 가지고 미래에 대해 끊임없이 공부하는 겸손한 자세로 끝까지 배움에 정진하라고 부탁하고 싶다. 그리고 언제까지나 시들지 않는 싱싱한 젊음을 유지하라고 당부하고 싶다. 올해는 유난히 졸업한 학생들에게 마음이 쓰인다.
지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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