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숙자씨
한국문화예술위 우수문학도서
고국땅에 보내는 낯선땅 따스한 이야기
지난 주말 유숙자씨의 수필집 ‘백조의 노래’(선우미디어 간)를 읽었다. 막 책 소개를 할 참이었다. 그러다가 이 책이 한국문화예술위원회(위원장 김병익)에 의해 올 3분기 우수문학도서에 선정됐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반가웠지만 놀랄 일은 아니라는 생각을 순간 했다.
한국의 문인들이 미국에 오면 부탁하는 말은 이제 미국 이야기를 써 줬으면 하는 것이다. ‘고향 그리워’ 식의 회고담이 한국 문학에 무슨 큰 의미가 있겠느냐는 것이다. 이 수필집은 우선 이민문학에 대한 한국문학의 이같은 요구를 만족시키고 있다.
제목이 튀어야 산다는 서울에서‘백조의 노래’라는 좀 고색 창연한 타이틀을 달고 나온 이 책에는 60편의 수필이 실려 있다. 이중 많은 작품은 한국 수필이 경험하기 어려운 이야기를 전한다. 한국 수필이 부딪힌 소재의 한계를 벗어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의 독자들로서는 요리 재료부터 색다르고 신선했을 것이다.
‘입양 손자 윌리엄’은 대표적인 것이다. 필자의 둘째 아들이 입양한 손자 윌리엄은 흑인이었다. “뭐, 흑인?”. 아들 내외로부터 이 소식을 전해들은 필자의 첫 반응은 이것이었다. 둘째 며느리가 백인이긴 했지만 흑인 손자란 ‘이민1세 할머니’에겐 아무래도 당혹스런 일 아닌가. 하지만 수필은 아들 내외의 결정을 기특하게 생각하고, 사랑스러운 손자를 주신 것에 감사하며 마무리된다.
‘살아있는 음반’도 이색 소재였을 것이다. 필자는 롯시니의 음반 하나를 노스리지 ‘타워 레코드’에 주문해 뒀다. 때마침 지진 때문에 그 가게는 문을 닫았다. 인근 다른 타워 레코드 점에서 이 음반을 찾았더니 뜻밖에 점원은 필자 앞으로 된 그 음반을 내놓는 것이 아닌가. 노스리지 점의 점원이 필자가 주문했던 음반을 노스리지 인근 2개 점포에 맡겨 두고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파밀라’’모레노 부인’ 등 타인종 이웃과의 따스한 인간적 교류를 다룬 글과 함께 이런 작품들은 한국 수필로서는 경험하기 어려운 이야기들이다. 치장보다 중요한 것은 내용물이다. 감동은 팩트(fact)에서 오는 것이지 얄팍한 글재주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미주 문인들에게 고무적인 이야기다.
이 수필집을 다양하게 하는 것은 필자의 발레와 음악사랑이다. 못다 이룬 발레리나의 꿈을 다룬 ‘백조의 호수’와 그의 다양한 음악체험을 이야기한 글들은 이 책을 풍요롭게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 책의 가장 큰 무기는 수필집 전체를 관통하는 따스함일 것이다.
요리를 할 줄 모른다는 며느리 대신 비 내리는 프리웨이에서 2시간 이상 걸려 퇴근한 아들이 허둥지둥 요리에 매달리는 모습을 본다면 어느 아들 가진 어머니가 울화가 치밀지 않을 것인가. 하지만 이 이야기를 다룬 수필은 ‘아내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는 아들의 모습이 아름답다’(‘미역국과 샐러드’)고 끝맺는다. 이런 온기가 이 책을 따뜻하게 하고, 읽는 독자의 마음을 훈훈하게 한다.
이 책을 우수 수필문학집으로 선정한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이 책 2,000부 정도를 사서 한국의 문화소외지역에 배부할 것이라고 한다. LA에서 쓴 ‘백조의 노래’ 혹은 그 백조의 좌절된 꿈과 그 뒷이야기가 한국의 곳곳에서 읽혀지게 된다는 것은 반가운 소식이다. 덕분에 이 책은 곧 재판에 들어가게 됐다.
이 수필집이 LA 문인의 수필로는 한국에서 처음 우수도서로 선정됐다는 보도(본보 지난 13일자 A2면)는 잘못된 것이다. 지난 2004년께 김동찬 시인의 수필집 ‘LA에서 보낸 편지-심심한 당신에게’와 마종기 시인의 시집 등이 문화예술위 전신인 문예진흥원에 의해 우수도서에 선정된 적이 있다고 한다. 짧은 취재 때문에 당사자들에게 결례를 했다.
<안상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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