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주(주부)
윤동주의 ‘무서운 시간’
거 나를 부르는 것이 누구요.
가랑닢 입파리 푸르러 나오는 그늘인데,
나 아직 여기 호흡이 남어 있소.
한번도 손들어 보지못한 나를
손들어 표할 하늘도 없는 나를
어디에 내 한몸둘 하늘이 있어
나를 부르는 것이오.
일을 마치고 내 죽는날 아츰에는
서럽지도 않은 가랑닢이 떠러질텐데……
나를 부르지마오.
시의 말미에 한자로 일구사일. 이. 칠 이라고 쓰여 있다. 한자가 사용된 어휘는 제목의 ‘시간’ 두번째 연의 ‘호흡’이다. 맞춤법, 띄어쓰기는 원문을 그대로 인용했다. 겨울이라서 아무래도 날씨가 차갑다. 그러나 연일 쏟아지는 불법 체류자 단속의 소식에 마음이 더 춥다.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법을 근거로 행하는 억압에는 정도가 있어야 한다. 인간이 다른 인간와 그 가족 전체의 생존을 위협할 권리를 도대체 누가 줄 수 있는가. 사형은 사회로부터의 영구적인 격리를 의미한다. 살아온 터전을 뺏는다는 것은 다른 의미의 사형이다. 불법 체류자가 우선은 사람이며, 그 중에는 가장도 있고, 부모도 있고, 자녀도 있다는 사실을 잊은 것처럼, 뉴스나 신문에 나오는 기사를 보면 그들이 다른 사람의 생명이나 안전을 침해한 범죄자와 마찬가지로 인식되고 있다. 병든 소수만을 보고 전체를 포기하는 것은 그 무리가 병든 것이 아니라 보는 눈이 병든 것이다
법은 사람을 위해 존재한다. 법을 지키기 위해 다른 아무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은 사람이 희생되는 일이 있다면 그것은 법이 아니라 폭력이다. 불법 체류자가 있어서 그대가 직접적으로 피해를 본 일이 있는가? 그렇다면, 정말로 그의 신분으로 인한 피해였는지, 그가 어디에나 있는 극소수의 사람이었는지 생각해 볼 일이다.
가장 중요한 것 하나를 꼽고 나면 둘째, 셋째 서열은 의미가 없다. 모든 나머지가 상황에 맞추어 가장 중요한 하나를 지키는데 사용된다. 사람사는 세상에서 그 하나가 사람(또는 삶)인지 법인지를 가려야 할 지경이 되었다. 중심을 잃어서 흔들리는 것이다. 경기가 침체되고 범죄가 느는 것은 한 사회가 가지는 유기적 생명력에 주기가 있기 때문이지 특정 집단이 주도하는 현상이 아니다. 불법 체류자가 아니면 미국에는 사건사고가 하나도 없는가. 정면으로 부딪쳐 해결해야 할 심각한 원인을 감추고 엉뚱한 곳으로 책임전가하는 것 같다.
지금 이 땅에서 안정된 생활을 하는 이들 중에도 그 부모나 전 세대 가운데 지금의 불법 체류자처럼 힘들게 살아온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 시간들을 내가 기억하지 못한다고 해서 있었던 일이 없게 되는 것은 아니다. 조금만 크게 보면 남의 나라에서 애쓰며 사는 모든 이들이 다 나의 모습이다. 가장 극단적인 반이민 정서를 가진 이에게 너는 누구였느냐고 물으면 어떤 대답이 돌아올지 참으로 기대된다.
추운 날씨, 무서운 시간에 그들이 따듯하게 머물 수 있기를 바란다. 건강에 조심하고, 힘든 시간 잘 버텨 주기를, 그리고 가족이 더 굳건하게 뭉쳐 화목하게 지낼 수 있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조금 나쁜 일에는 조금만 슬퍼하기를, 조금 좋은 일에는 하늘을 울릴 듯 크게 웃기 바란다. 실행 여부보다 선거를 의식한 정책들도 있다. 이 겨울을 잘 지내면 또 다른 기회가 올 거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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