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가주 거주
영원한 해병
이윤우 씨
충무무공훈장
화랑무공훈장
한꺼번에 받았다
1949년 해병에 입대, 지리산 공비, 한라산 공비 소탕 작전과 연일 이어지는 맹훈련으로 여념이 없던 어느 날 해병 2기 이윤우(75) 씨는 6.25를 맞았다. 3일만에 서울을 점령한 인민군이 밀고 내려오는 기세는 대단했다. ‘청년해병 이윤우’는 일본군이 버리고 간 99식 소총 한자루를 쥐고 창원전선 어느 방어선에 투입돼 인민군과 처절한 전투를 벌였다. 피로 사수한 방어선을 육군에게 넘기고 그는 부산 부두로 이동했다. 병력 수송선에 몸을 맡긴 채 몇일이 지난 후 9월 15일 상륙정에 옮겨타고 해안을 향해 진격했다. 인천상륙작전이었다.
사전 폭격과 포격에 초토화된 인천 부두엔 큰 저항이 없었고 그대로 서울까지 진격했다. 9월 28일 서울을 탈환했다. 그는 그 날의 감동과 환희를 아직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북진하는 육군과 함께 원산 상륙, 함흥 진격, 귀신 잡는 해병의 신화를 만들어낸 도솔산 전투, 서부 장단 전투, 88전투 등 그는 수많은 전투를 뚫고 조국을 위해 싸웠다.
그리고 이후 약 60년이 지났지만 이윤우 씨는 아직도 6.25만 되면 전사한 전우들을 잊을 수 없다. 그는 훈장을 타면서 “내 자신은 살아서 훈장도 받았지만… 친구들이 받아야될 훈장들인데… “라며 “6.25만 되면 죽어간 친구들이 생각나 마음이 안좋다”라고 옛 전우들을 잊지 못했다.
현재 북가주에는 같이 참전했던 해병 3기 박청석(75) 씨가 생존해 있다. 박청석 씨는 화랑 무공훈장을 수여받았다.
이윤우 씨는 전쟁 당시인 1952년 12월 12일 대한민국 무공훈장 5개 중 두번째인 충무 무공훈장을 수여받았고 같은해 12월 22일 화랑 무공훈장을 받았다. 대한민국 무공훈장 중 두번째로 높은 충무 무공훈장은 도솔산 전투의 공로를 인정받아 수여받았고 화랑 무공훈장은 서부 장단 전투에서의 공로를 인정받은 것이다.
3년전 그는 당시까지 받지 못한 훈장과 증서를 받기 위해 국방부로 찾아갔다. 국방부에서 영사관으로 보내준다는 연락을 받고 돌아온 그는 이후 상훈업무가 행자부로 이전되는 과정에서 훈장과 증서를 받지 못했으나 올해 4월 9일 충무 무공훈장과 수여증명서, 화랑 무공훈장과 수여증명서를 각각 받았다.
한편 대한민국 무공훈장은 태극, 충무, 화랑, 을지, 인헌의 5개이며 이윤우 씨의 훈장은 두번째와 세번째에 해당한다.
<박승범 기자> sbpark@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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