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University Lutheran Chapel에서 열린 고 거스 슐츠 목사 추모식.
8일 추모식 300여명 애도
1970년대부터 한인들과 함께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노력해 온 고 거스 슐츠 목사의 추모식이 8일(토) 평소 사무를 보던 University Lutheran Chapel에서 추모객 300여명이 모인 가운데 열렸다.
이날 추모식에서는 고 거스 슐츠 목사의 가족인 캐서린 앤 포드(Kathryn Ann Ford)씨를 비롯, 한국학위원회 폴 림(Paul Liem)씨 등이 나와 고인의 생전 말씀과 행적 등을 언급하며 고인을 기렸다. 이날 2층 예배당에는 더 이상 좌석이 없어 1층에서 영상을 보여주는 공간이 마련됐다.
1935년 앨러바마(Alabama)의 작은 마을인 폴리(Foley)에서 태어난 고 거스 슐츠 목사는 1961년 목사로서 봉사하는 길을 택한다. 한국인들보다 더 한국을 사랑했던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남북관계 개선 등에 지대한 노력을 했던 고 거스 슐츠 목사는 1970년대 교회와 교포들과 함께 박정희 대통령 독재정권에 맞서 투쟁하는 한국사람들을 도왔으며 1980년대 전두환 대통령 정권 당시 김대중씨의 사형을 막기 위해 ILWU(International Longshore and Warehouse Union)의 파업을 주도했고 이것이 인연이 돼 김대중 대통령 취임식에 초청받았다.
1980년 첫 방북을 시작으로 종교단체와의 교류를 도모한 그는 1990년대에는 버클리 한국학위원회(CKS)의 활동을 적극 지지, 학생들을 도와 매년 한반도 평화통일 심포지엄 행사를 개최하도록 했다. 평화통일 심포지엄을 개최할 당시 북측에서 인사를 초청하는 것이 학생들 입장에서 쉬운 일이 아니었으나 거스 슐츠 목사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남북의 유력인사들을 불러올 수 있었다.
고 거스 슐츠 목사는 민권운동가로서 베트남전부터 이라크전까지 민권 옹호를 위한 활발한 활동을 계속했고 하루에 한끼 노숙자들을 위해 무료로 식사 제공도 해왔다.
한편 버클리 한국학위원회에서는 고 거스 슐츠 목사가 생전에 한국에 보여준 사랑과 헌신에 보답하고자 졸업생들과 현 한국학위원회 학생들을 중심으로 장학금 제도를 추진하고 있다. 장학기금은 하루만에 만달러 이상이 모일 정도로 빠르게 추진되고 있다.
<박승범 기자> sbpark@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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