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인 시절의 이명박 한국 대통령과 미국의 에리카 김·김경준 남매의 ‘부적절’한 관계를 조사해오던 정호영 한국 특별검사팀의 문경배 특검보는 지난 21일 이 사건을 ‘검은머리의 외국인에게 대한민국이 우롱당한 사건’이라고 결론지었다.
‘검은머리의 외국인’은 한국 증권가에서 주가를 조작하기위해 외국에 구좌를 개설한 한국인을 뜻하는 말이지만 그는 당연히 해외 한인들을 지칭한 것이다. 한국 최고로 손꼽히는 법조인답게 참으로 교묘하게 표현했다. 해외 특히 미국 한인입장에서는 기분 좋은 말은 아니다. 곱씹어 볼수록 조롱당한 느낌이 가시질 않는다.
일명 BBK 사건으로 불리던 이번 사건은 미국 아이비 출신 두남매가 대선전 2개월여에 걸쳐 한국 언론을 등에 업고 민심을 뿌리 채 흔들어 놓은 이류 정치 스캔들이었다. 연일 터져 나오는 이들 자매의 폭로성 발언은 정권 말엽 무료해진 한국 정치권에 더할 수 없이 재미있는 볼거리, 읽을거리를 제공했다.
결국 검찰 수사의 이명박 후보 무혐의 발표에 이어 특별검사팀 무혐의 처리하면서 인기리에 방영되던 희대의 단막극은 종영을 맞았다. 38일간에 걸쳐 방대한 양의 기록을 검토하며 수사를 집중해온 특검 입장에서는 당연히 두 남매를 곱게 볼 리가 없었을 것이다.
사실 두 남매가 한국의 특검이나 정치권에서만 미움을 받는 것은 아니다. 많은 한인들도 동포 이미지에 먹칠을 했다며 따가운 시선을 보내기는 마찬가지다. 하지만 이번 특검의 발언은 여러모로 이해가 가질 않는다. 사석에서의 발언도 아니고 공석에서 그것도 기자회견 형식을 빌린 자리에서 미주 한인들에게 모욕감을 주는 말을 거침없이 해 댄 것이다.
미국에서라면 발언 당사자인 문경배 특검보가 문책을 당하고도 남을 일이다. 다분히 인종적이고 차별적 발언이기 때문이다. 언론의 집중 포화를 받아야 마땅했다. 하지만 한국 어느 언론도 ‘검은머리의 외국인’이란 표현에 대해 문제를 삼지 않고 있다. 하도 설쳐대던 김씨 남매의 농간에 놀아났던 자신들의 분함을 대신 풀어주는 말이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지난해 한국 대선에서 한인들은 물심양면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후원회도 조직하며 응원전도 벌였고 한국 유세판에 뛰어들어 지지후보 대통령 만들기에 온갖 정성을 쏟아왔다. 얼마전 대통령 취임식에는 무려 1,400여명의 미주 한인들이 참석해 새정부 출범을 축하했다. 한국이 잘되기만을 바라는 한인들의 다소 ‘촌스러운’ 표현인지도 모르겠다.
이번 특검의 ‘검은 머리……’ 발언은 소위 한국의 지식층 위치에 있는 사람들의 입에서 나온 것이다. 한국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주변에서 맴도는 미주 한인들에게 던져준 비아냥일 수도 있다.
중동 붐이 한창이던 70년대 중반. 열사에 그을려 검게 탄 얼굴로 외제물건 가득담은 이민 가방을 질질 끌며 동네 어귀에 들어서던 귀국 근로자가 촌스럽기 그지없었던 때도 있었다.
지금은 잘먹고 잘사는 한국인들에게 미주 한인들의 모습은 어떻게 비쳐질까 궁금하다. 노동에 찌들어 검게 그을린 얼굴로 거들먹거리며 다니는 촌스러운 ‘동포’의 모습은 아닐지 걱정된다.
특검보의 말처럼 미국에 살고 있는 한인들이 ‘검은 머리의 외국인’으로 비쳐진다면 우리는 한국민들의 영원한 이방인이 될 수밖에는 없다. 한국정부에 군사 정보를 빼줬다가 옥고를 치렀던 한 한인 역시 그들에게 이용당해 웃음거리가 될지도 모른다.
태극 마크를 달고 싶어 눈물을 흘렸던 한 2세 여성 골퍼의 하소연도 한국에서는 비웃음의 대상이 될 수도 있었겠다.
미국에서 살면서도 관심은 온통 한국에만 쏟아 붓는 서울특별시 나성구 주민들에게 대한민국 박 특보는 ‘검은머리 외국인’이란 표현으로 무언의 경고장을 보냈다. 미국에 정붙이지 못하는 한인들이 갈 곳은 아무데도 없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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