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범을 닮은 ‘재규어’는 아메리카 대륙에만 사는 고양이과 동물이다. 그래서 ‘중남미의 표범’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고대 아즈텍과 마야 문명에서 초자연적인 힘을 가진 영물로 숭배되기도 했던 이 맹수는 미국에서는 야생종을 찾아볼 수 없어 멸종된 것으로 여겨져 왔다. 그러다 10여년 전 뉴멕시코 및 애리조나주의 국경 근처 험준한 산악지대서 야생 재규어 몇 마리가 발견된 이후 미국내 희귀동물 반열에 올랐다고 한다.
지난주 로이터통신이 다뤘던 스토리의 일부인데, 재규어가 조명된 배경이 다소 엉뚱했다. 멕시코 국경 밀입국 문제의 주인공으로 등장한 것이다. 국경을 따라 밀입국 방지용 ‘펜스’가 설치되면서 야생 재규어 서식지가 위협받고 있어 이들을 연구하는 동물학자들이 우려하고 있단다. 위험을 무릅쓰고 월경을 선택하는 밀입국자들의 모습과 동물의 왕국에나 나올법한 야생 재규어의 오버랩은 뜬금없다 못해 뒷맛을 씁쓸하게 했다.
느닷없이 재규어까지 뉴스에 등장시킨 이 국경 펜스 문제는 사실 상당한 논란거리가 되고 있다. 올해 대선을 앞두고 극도로 민감한 미국내 불법 이민자 문제가 중심에 있는 데다 재규어로 상징되는 환경보호와 생태계 문제까지 얽혀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국경 펜스 설치 계획은 부시 대통령이 불법 이민 문제 해결책이라며 야심차게 밀어붙였던 포괄적 이민개혁법이 결국 의회에서 좌초하면서 반이민 기류를 등에 업은 강경론자들의 득세가 가져온 산물이었다.
총 2,000마일에 달하는 멕시코 국경 중 밀입국이 빈번한 지역 670마일에 걸쳐 아예 월경이 불가능하도록 물샐틈없이 담벼락을 둘러치겠다는 것인데, 이 펜스의 실제 사진을 보니 우리가 흔히 휴전선을 생각하며 떠올리는 철조망이 아니라 정말 동물 한 마리도 빠져 나오지 못할 것 같은 ‘장벽’에 가깝다.
황량한 국경지대에 버티고 선 기나긴 장벽의 모습에는 ‘이민자들의 침공’ 운운하며 물리적인 ‘국경 봉쇄’를 주장하는 강경 반이민론자들의 극단적 논리가 투영되어 있다. 이들의 주장에는 ‘불법은 어디까지나 불법’이라는 논리를 앞장세우며 불체자들을 범죄자와 동일시하는 인식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체류신분 위반이 위법이라는 사실을 부인할 수는 없지만, 그러나 단순 체류신분 미비를 마치 범죄인 것처럼 몰아가는 극단적 반이민론자들의 주장의 실체는 결국 ‘법’의 문제가 아니라 ‘인종’의 문제라는 반대편의 지적은 통렬하다. 만약 중남미인들이 아니라 흰색 피부의 유럽인들이 대거 국경을 넘어오는 상황이라면 이처럼 난리를 치지는 않으리라는 것이다. 물론 공화당 대선 후보 출신의 극우 보수논객 팻 뷰캐넌이나 ‘문명충돌론’으로 잘 알려진 새뮤얼 헌팅턴처럼 이른바 히스패닉의 ‘갈색 침공’에 공공연하게 혐오감을 드러내는 인사들도 있지만 말이다.
야생동물까지 괴롭힌다는 국경 장벽의 진정한 문제점은 과연 이같은 물리적 방벽을 쌓는다고 해서 불법 이민자 유입 문제가 해결되겠냐는 것이다.
포괄적 이민개혁을 통한 근본 시스템 변화가 이뤄지지 않는 한, ‘일자리’와 ‘기회’라는 경제적 동인을 따라 매년 밀려오는 이민자들에게는 그저 넘어야 할 담벼락이 하나 더 생긴 것에 지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담을 피해 미국으로 들어오려는 월경자들을 더 위험한 루트로 내모는 역작용을 초래할 가능성이 더 크다.
2,700여년전 춘추시대 때부터 진시황을 거쳐 명나라에 이르기까지 중국 왕조들이 북방 민족을 막겠다며 쌓은 만리장성은 역사적으로 방어벽으로서의 실효성은 그리 크지 않았다는 평가가 있다. 오늘날 미국과 멕시코 국경을 막아서는 장벽이 소위 오랑캐의 침략을 막겠다는 명분으로 중국의 위정자들이 세워놓은 만리장성의 현대판이라고 한다면 지나친 비유일까.
김종하 사회부 부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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