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침투 훈련을 받았던 전 특수부대 출신 남성이 6.25 전쟁 발발 53주년인 25일 동작동 국립묘지 전몰 용사 묘소에 소형 태극 깃발을 꽂고 있다.
한반도 최대의 참화였던’6.25’를 미국인들은 흔히‘잊혀진 전쟁’이라고 말한다. 한국의 초등학교 학생들 가운데 38%가 6.25전쟁을 조선시대에 일어났던 전쟁으로 알고 있다는 조사결과도 나왔다.그러나 전쟁을 체험한 세대에게 6.25는 결코 잊을 수 없는 민족적 수난이자 개인적 악몽으로 남아 있다. 6.25 발발 53주년을 맞아 샌프란시스코의 민귀영씨가 보낸 기고를 정리, 게재한다.<권선주 기자>
6.25! 이날이 오면 처참했던 동란으로 가족과 생이별 또는 사별한 수많은 동포들을 생각하게 된다. 이들에게 신의 가호가 있기를 빌며 그때를 회고해 볼까 한다.
공산군 수중에 합락된 서울에서 나는 피난을 가지 못하고 모진 목숨을 부지하고 있었다. 남편은 함께 피난을 떠나자고 설득하고 강요했으나 그때 임신 6개월의 무거운 몸으로 건강도 시원치 않아 잘 걷지도 못하는 내가 남편에게 짐이 될 건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혼자 떠나셔야 해요, 함께 가다간 다 죽어요”나는 그에게 혼자 가라고 애걸하다가 나중에는 모질게 그의 등을 떼밀었다. 이것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슬프다 못해 처절하기까지 했다.
그렇게 남편과 헤어지고 며칠 뒤 세상은 바뀌었다. 공산군이 서울을 장악했고 말 한마디 잘못하면 언제 반동으로 끌려갈지 몰라 이웃끼리는 서로 믿지 못하며 터놓고 이야기도 할 수 없던 때였다.
서울을 장악한 공산군은 집안을 샅샅이 뒤지며 남편의 행방을 대라고 을러댔다. 나의 남편 민재호는 해방전부터 서울 중앙 방송국에서 10여년 동안 반공 방송을 해서 이북에서도 꽤나 알려진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모른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실제로 눈물의 이별 후 그의 생사조차 알 수 없던 나로서도 그의 행방을 모를 밖에.
그 후 몇번씩 한밤중에 장총을 멘 공산군에게 끌려 가 남편이 어디에 있는지 대라는 심문을 받아야 했다. 그들은 윽박지르며 공포심을 자극했다. 그러나 다행히 임산부라는 이유로 다른 이들처럼 가혹한 고문을 당하지는 않았다. 아이가 뱃속에서 어미를 살린 셈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여느 때처럼 마루 밑 방공호 속에 몰래 숨어 이불로 겹겹이 라디오를 싸고 방송을 듣다가(그때는 라디오를 듣다가 걸리면 즉석에서 총살이었다.) 우연히 남편의 방송을 듣게 되었다. 그 순간 강한 전류에 전신이 감전된 것 같았고 심장은 터질 듯 방망이질 쳤다.
‘그이는 무사하다. 그이는 살아있다. 나만 죽지 않는다면 다시 만날수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벅찼다.
후에 안 일이지만 그는 무사히 남하하여 임시정부와 방송국이 초기에 자리 잡고 있던 대전에서 근무하다 일본 동경 주둔 맥아더 사령부에 전속되어 있었던 것이다. 방송에서는 공산군 수중에 있는 남한 사람을 격려하고 위로하며 국군과 연합군이 서울을 탈환하기 위해 전투중이니, 참고 기다리면 꼭 여러분을 구해 내겠다는 희망을 알렸다. 남편의 그 목소리는 마치 하늘에서 내려오는 구세주의 소리처럼 들렸다.
하지만 적의 항공기가 공습할 때면 등화관제로 칠흑 같은 어둠은 계속되었고 죽음의 위협 속에서 떨며 굶주림에까지 시달리며 지내야 했다. 그렇게 혹한 세월을 견디다 보니 어느덧UN군 인천 상륙의 날을 맞았다. 그리고 서울은 드디어 해방이 된 것이다. 남편은 개선장군처럼 돌아왔다.
그로부터 58년이 지난 지금, 남편은 이미 세상을 떠났지만 그때 뱃속에서 모진 세월 잘 견뎌준 태아는 지금 중년을 지난 단정한 여인이 되어 내게 지극한 효성을 아끼지 않는다.
그 비참했던 6.25 동란이 다행히도 내겐 해피앤딩으로 끝났지만 그때에 작별하고 영영 다시 만나지 못한 숱한 사람들의 아픈 사연을 이 눈으로 보고 경험한 나로선 이때가 되면 다시는 이런 전사(戰史)가 내 땅을 휩쓰는 일이 없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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