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친구에게 받았던 참 소중한 편지 하나가 기억난다.
그것은 단지 ‘인간으로 산다는 것은?’이라는 알듯 모를 듯한 한줄 메모와 함께, 응축되어 거의 철사처럼 된 자코메티의 조각 사진이 담긴 엽서였는데 난 이 엽서를 보는 순간 마른 나무 막대기 하나로도 인간을 말할 수 있는 그 소통의 힘과 명쾌한 시각적 표현이 얼마나 신선하고 마음에 와 닿았던지 그 순간 자코메티에게 느꼈던 진정한 연대감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당시 고등학생이던 난 연극에 깊이 빠져있던 시절이라 파리 오데옹 극장에서 공연된 새뮤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의 무대장치를 설계한 자코메티에게 더 각별한 동질감을 느낀 듯하다. 그 후 한동안 내 친구들 사이에서는 부피도 무게도 없는 유령 같은 그의 조각 복제품을 사느라 없는 용돈을 함께 모았던 기억이 난다.
1901년 스위스의 유명한 화가 조반니 자코메티의 아들로 태어난 알베르토 자코메티는 2차 세계대전 후의 정신적 위기상황에서 희망을 잃고 망연자실해 있던 인간의 고뇌와 불안을 그만의 섬세한 감각과 통찰력으로 표현해 낸 20세기 조형미술의 대가이다.
또한 그의 작품들은 종종 실존주의 문학과 비교되기도 하는데 특히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는 유명한 철학적 명제를 들고 나와 실존주의라는 새로운 사조로 역사에 자리매김을 한 장 폴 사르트르는 자코메티의 작품을 ‘부정의 시작이며 무(無)로 가는 여정’이라고 평하기도 했다.
그러나 굳이 실존주의 운운 하지 않더라도 수척한 자코메티의 인물조각을 한번쯤 본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볼륨을 상실한 그 기묘하기 짝이 없는 모습에서 상처받고 부서지기 쉬운 우리 모두의 자화상을 쉽게 겹쳐볼 수 있게 된다.
그는 말했다. ‘거리의 사람들을 보라. 그들은 무게가 없다. 어떤 경우든 그들은 죽은 사람보다도, 의식이 없는 사람보다도 가볍다. 내가 부지불식간에 가는 실루엣처럼 다듬어 보여주려는 것이 그것이다. 그 가벼움 말이다.’라고.
모든 사물이 지니고 있는 덩어리(mass)와 양감(volume)에서 존재의 무게감을 덜어내 버린 유령과도 같은 그의 조각들은 존재의 가벼움’이며 ‘소통의 부재’에 관한 것이다. 예술을 통한 작가의 시선은 종종 우리를 재구성해 주고 비밀스러운 상처를 찾아서 아물게 해준다.
롤러코스트를 탄 듯 경제적 부침이 심할 것이라는 2009년. 자신의 삶이 어느 날 아스라한 난간에 서있다고 느껴져 쓸쓸함과 덧없음에 절망하고 있다면, 우리의 불안과 고독을 시각적인 비움과 절제로 해석해낸 자코메티처럼 우리도 한 번쯤은 인생의 해묵고 질펀한 부분들을 과감히 잘라 무게감을 덜어보면 어떨지…
“아! 아주 가볍구나. 우리의 존재는 아주 가볍구나” 낮은 한숨과 함께 새털같이 날아가 버릴 우리 존재의 우연성을 실감할 때 우리는 어쩌면 기대하지 않았던 진정한 희망을 불현듯 감각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LA 부근 자코메티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곳-LACMA, Norton Simon Museum, MOCA
<앤드류샤이어 갤러리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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