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미국 대통령 선거 때 존 케리 후보의 월남전 참전 경력을 오도하는 인신공격 광고가 유권자들에 먹혀들고 결국 군복무를 제대로 하지도 않은 부시 대통령의 재선으로 연결 되었을 때 나는 과연 미국인들이 제정신인가 하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요즈음 건강보험 개혁을 놓고 온갖 유언비어를 퍼뜨려 사람들을 혼란시키는 작전이 효력을 발휘, 진보파와 보수파가 극심히 대립하는 양상을 보며 나는 다시 유사한 생각을 하게 된다.
한국에서도 여야 대립의 골은 깊어만 가고 공조의 기색은 찾을 길이 없어 보인다. 그래서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의 전현직 의원 보좌관들에게 국무총리 인준 표결 회의장에서 자리를 지킨 채 반대표를 던지면 되지 굳이 왜 집단퇴장을 했느냐고 물었다. 돌아온 대답은 약간 의외였다. 무기명 투표였기에 민주당에서 이탈자가 나올 가능성을 당 지도부가 우려했다는 설이 유력하다는 것이었다.
“청문회를 끝까지 자세히 들여다보면 병역기피, 다운계약서, 위장전입, 논문 표절, 공무원법 위반 등등은 근거 없음이 드러났고 본인이 두 가지를 인정했지만, 세금탈루는 한국 세법상 5년 이내에 자진신고, 자진납부하면 되므로 위법으로 몰 수가 없지요. 모기업체 사장으로부터 천만원을 받았다는 것은 마치 서울대 총장 재임 때 일어난 일로 오해하도록 분위기를 끌고 갔지만 사실을 요약하면 총장직 퇴임 1년이 훨씬 지나 외국에 교환교수로 갈 때 오랜 친분이 있는 지인이 용돈을 준 것이라 누가 뭐라 할 일도 아니거든요.”
민주당의 인사청문회 위원들은 자기들이 맹공을 퍼부으면 총리 후보자가 강력하게 방어를 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순발력 있는 대처를 못하니까 신이 나서 더욱 기세를 떨치게 된 면도 있다고 했다. 이번처럼 강도 높은 청문회를 준비해 본 경험이 없었던 총리실에서 효과적으로 대비하지 못한 것으로 보였고 후보자 자신도 황당한 공세에 순간순간 ‘나 이런 거 안해’ 하고 무대에서 내려오고픈 충동이 있었을 것으로 짐작한다고들 했다.
미국의 경우에는 인사 청문회에서 의혹이 제기되면 언론이 앞을 다투어 진실 규명에 나서는데 어째서 한국 언론들은 구경만 하냐는 질문에 ‘조중동’은 정부와 한통속이라는 말을 듣기 싫고, 한겨레, 경향, 오마이뉴스 등등은 자기들의 독자층 눈치를 봐야 하니 그럴 수밖에 없다는 답이었다.
그러면서 그들은 이렇게 말했다. 국민들은 진보요 보수요 다 이젠 지겨워한다고.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비전을 제시하고 목표를 세워 온 국민이 합심하여 대한민국을 다음 단계로 발전시킬 수 있는 리더십을 원하지 개인적 욕심과 정권에의 욕망에 눈이 멀어 싸움질이나 하는 정치인들을 우습게 안다고. 찐하게 운동권 노릇도 해보고 문민정부,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 다 거쳐 본 자신들도 생각이 그렇다고 했다.
블루 스테이트, 레드 스테이트로 갈려 극명하게 대립하는 나라를 하나로 만들자는 기치를 내건 오바마 후보를 대통령으로 뽑은 미국이건만, 미국에 꼭 필요한 건강보험 이슈를 놓고 우리는 타협이 아니라 건강보험 개혁을 위해 당신을 뽑았다고 외치는 진보 측과 미국을 사회주의 국가로 몰고 가려 한다는 보수 측의 고함 속에 고전하고 있는 오바마 대통령과 비교하자면 중도실용을 내세워 인기도를 높이고 있는 한국의 이명박 대통령은 행복한 지도자로 보인다.
현명한 ‘조용한 다수’들이 결국 나라를 지켜 간다는데, 그러한 조용한 다수들이 오늘 이 순간에는 미국보다 한국에 오히려 더 많은 모양이다.
김유경 / Whole Wide World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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