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뉴스 중에서 외국인 중년신사의 사진이 눈길을 끌었다. 기사의 제목은 ‘한국인 어머니 덕에 한국문화 참맛 알아’였다. 미국인인 그는 밀레니엄 힐튼호텔 총지배인 에릭 스완슨이란다. 기사를 훑어보다가 깜짝 놀랐다. 그의 어머니가 바로 필자와 같은 여학교 동기동창생이며 한 때 무척 가깝던 친구였기 때문이다.
그녀는 워싱턴 D.C.에 살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뇌종양 암을 앓기 전 유방암과 싸우는 어머니가 안쓰러워 서울로 모셔온 지 1년 남짓이라고 그가 설명하고 있다.
그녀는 스미소니언 국립자연사 박물관 내 한국관 개관에 기여한 한국문화 전문가다. 언젠가는 근무처 발행 책자를 보내온 일도 있었다. 중요한 업적 중의 하나로 그녀는 조선시대의 옥새를 찾아 한국에 직접 들고 가서 반환하였다는 기사를 읽은 기억이 있다.
한국 내 동창생에게 연락하여 몇 차례 문병을 갔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며칠 전 그녀는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한국 신문에서 또 ‘외규장각 도서 잊었나?’라는 제목의 칼럼을 읽었다. 그 글에는 박병선 박사가 소개되어 있었다. “박병선 박사는 20대 후반에 프랑스로 유학 가 여든이 넘도록 오직 우리의 잊혀진 국보를 다시 찾아내 그 가치를 되살리는 데 평생을 바쳤다. 1972년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소장돼 있던 직지심경(直指心經)이 구텐베르크의 42행 성서보다 78년이나 앞선 세계 최고임을 입증했고, 79년엔 프랑스 국립도서관 별관 수장고에 방치돼 있던 외규장각(조선왕실도서관인 규장각의 분관) 도서를 극적으로 찾아내 10년에 걸쳐 해제작업을 해냈다”며 그녀의 업적과 함께 현재 병석에 있음을 알려준다. 그녀는 대학 동창이며 부산 피난시절의 친구였다.
한 개인과 그 나라의 역사는 어떤 관계가 있나. 나는 역사와 아무 관계가 없다고 믿는 사람, 나는 역사 속에서 살고 있겠지만 평상시는 그것을 느낄 수 없다는 사람, 나는 역사의 흐름 속에 있겠지만 그것에 공헌할 길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 역사를 사랑하고 그 흔적을 찾아다니는 사람, 역사 속에 새로움을 보태려고 노력하는 사람 등 개개인의 역사관은 천차만별이다.
앞에 말한 친구들은 역사를 찾아냈다. 그들은 역사를 찾는데 공헌했고, 그 결과 보이지 않던 부분을 드러내어 빛을 보게 하였다. 역사관이 분명하고, 꾸준한 노력 없이는 이룰 수 없는 쾌거이다.
그들은 외국생활이 국내생활보다 훨씬 길어 거주국에 동화된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그들은 각자의 직장에서 한국에 공헌할 수 있는 길을 찾아 줄기차게 노력하였다. 그 결과 빛나는 성과를 올려서 가려졌던 역사를 찾아낸 것이다.
우리들은 미국에 살고 있다. 1세들에게는 한국역사의 기억이 가물가물하고, 2세들에게는 미국역사가 자리 잡고 있는 형편이 아닐까. 한국역사는 동양사와 세계사의 일부분이고, 미국사 역시 같은 시점에서 고찰해야 이해가 된다고 본다. 개개인도 세계사, 동양사, 한국사, 미국사의 생활권에서 살고 있다.
또한 우리들은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가고 있다. 옛 것 위에 새로움이 가미되어 전에 없던 것들을 만들어 낸다. 한국에서는 영어 조기교육을 시행하고, 미국에서는 공립학교에 한국어반 수효가 늘어난다. 한국에서는 피자를 즐겨 먹고, 미국인들은 비빔밥과 불고기를 찾기 시작하였다.
역사도 살아서 움직인다. 전통문화의 변화한 모습을 보는 것도 즐겁다. 그렇다고 원형을 잊을 수 없다. 개인이 의식하거나, 의식하지 못하거나 우리는 역사의 큰 흐름 속에서 생존하고 있다. 그 흐름 속에서 떠내려가지 않으려면 역사의 한끝을 잡고 새로움을 보태는 것이다. 우리 역사의 원형을 찾아낸 두 친구에게 감사한다.
허병렬 / 교육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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